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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군대 그리고 여성
  • 편집국
  • 등록 2017-05-12 12:56:25
  • 수정 2017-05-12 12:5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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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라빠빠빰빰빰빠라바 빠” 언젠가 아침수업에 늦어 서울캠퍼스 후문을 통해 허겁지겁 교내에 들어설 때 들리던 낯익은 연주곡이었 다. 신나고 경쾌한 연주소 리와 함께 박수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 곡의 이름은 ‘라 데츠키 행진곡’이다. 하지만 나는 굉장한 이질감이 들었 다. 라데츠키는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던 이태리 북부의 독립운동을 진압했던 육군 원수다. 작곡가 요한스트라 우스는 19세기에 부패한 오스트리아 전제정치에 대항 한 시민혁명을 진압하는 정부군의 사기증진을 위해 라 데츠키 장군의 이름을 빌려 이곡을 만들었다. 혁명을 진 압하는 정부군을 위한 노래가 교내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은 당시 내게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또 한국사회 와 군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한국사회에서 군대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1960~80년대까지 30년간 이 격동의 군사정권을 거 치면서 우리에겐 매우 특별한 관습들이 생겨났다. 남자라면 누구든 군에 입대해야 했고 지금의 나 또한 마찬 가지였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군에 대한 부정적인 시 각과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 군대는 인간을 억지로 ‘평균’에 끼워 맞춘다. 같은 군복, 같은 말투, 같은 식사, 같은 걸음걸이, 같은 목표, 같은 생활 심지어는 속옷 색 깔마저 같이한다. 단순한 상명하복과 위계질서를 통해 모두 ‘같은’ 것만 보게 하는 기이한 인간을 만들었으며 이것은 단일한 목표달성을 위해 매우 효율적이고 신속 한 체계를 만들어냈다.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최적의 방법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남성이 이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전역 한 후에는 사회곳곳에 흩어지게 된다. 남성중심의 군대 문화는 사회의 모든 조직에 스며들게 됐고 사기업, 공기 업, 학교, 가정을 비롯한 모든 크고 작은 조직에서 보편 화됐다.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 이면에는 큰 아픔 들이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평균 밖의 사람들을 밀어낸다. 비슷한 패션, 비슷한 헤어스타일, 비슷한 생각, 비슷 한 식사,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머리색이 다르고 나와 다른 옷을 입고 나와 식습관이 다르며 나와 생각이 다 른 모든 사람을 이방인 쳐다보듯 한다. 그리고 이런 ‘분 리’는 여성과 남성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대한민국 산업 화시대의 주역들은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성중심의 국가발전을 통해 ‘보릿고개시절의 대한민국’을 ‘세계경제지표 10위권의 대한민국’ 으로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속에서 설자리를 잃어왔던 여성들 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현대사회는 변화했고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교육률, 모든 분야에 서의 점유율은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 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직에서 받는 불이익은 여전해 보인다. 남성중심의 발전행정과 경제성장에 익숙해진 남성들은 여성의 존재를 여전히 어색해하기 때문이다. 상명하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직문화에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 각하거나 생리공결, 출산, 육아휴직과 같은 남성 과 ‘다름’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어차피 시집가고 안볼 사람’ 이라고 여성을 폄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형평성을 이유로 생리공결 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교양교수를 본적도 있다. 나는 최소한 학문의 전당에서만큼은 이런 폭력 적인 언사를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어디선가 이러한 일들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변화 하고 있지만 여성과 남성간의 간극은 아직도 좁혀지지 않는다. 다름과 틀림을 분명하게 받아들 이기 위해서 미래를 책임질 우리 학생들부터 나 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 보자. 우리들로부터 시작될 위대한 ‘방향의 전환’이 대한민국의 ‘평균’ 이 될 수 있기를 나는 간곡하게 기원한다.

 

박세환 (행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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