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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우리의 지갑을 위협하는 애그플레이션
  • 이정빈 기자
  • 등록 2024-04-03 18: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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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그플레이션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국내 경기
최근 사과와 배에 금사과, 금배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과는 한 알에 5,000원, 배는 4,000원이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좀처럼 사먹을 일 없는 농산물 가격만 올랐다고 안도할 때는 아니다. 당장 내가 사용하는 휴지 한 장도 폭등한 가격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지 자세히 알아봤다.

최근 급등한 농산물의 가격


 통계청이 지난달 6일 발표한 2월 소비자 물가 동향에 의하면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보다 3.1% 상승했고 특히 과일값이 대폭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과일값이 폭등했을까? 그 원인은 바로 이상기온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에 있다. 과일 공급이 급감함에 따른 반동으로 물가가 오른 것이다. 농산물은 흔히 가격탄력성이 낮은 재화로 불린다. 예컨대, 파 한 단의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고 해서 요리할 때 일절 파를 쓰지 않는 가정이 나오기는 어렵다. 가격이 상승해도 소비량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농산물의 가격이 너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이는 옛말이 됐다. 실제로 작년 김장철을 앞두고 배춧값이 치솟으면서 김장을 포기하겠다는 집이 속출했다. 농산물 가격탄력성이 마냥 낮지만은 않은 상황에 일각에서는 애그플레이션이 심화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의 의미와 원리


 애그플레이션이란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inflation’의 합성어로 곡물 가격 상승이 원인인 일반 물가 상승을 말한다. 2007년 메릴린치가 ‘세계 농업과 애그플레이션’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는 정식 학술 용어로 통용 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견지하는 애그플레이션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크게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농산물의 생산량 감소 △인구 증가로 인한 곡물 소비 증가 △육류 소비 증가로 인한 가축 사료 수요 증가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앞선 이유들로 촉발된 곡물 가격 상승이 일반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는 다음과 같다. 밀, 옥수수 등의 곡류 가격이 상승하면, 자연히 가축들의 먹이의 가격 또한 상승한다. 이에 가축 운영비가 증가하는데 악조건 속에서도 이익을 봐야만 하는 농장주는 불가피하게 육류의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축은 소비자에게 단순히 육류뿐만 아니라 우유, 버터 등과 같은 유제품도 함께 제공하기에 시장 내 유제품의 가격도 잇따라 상승하게 된다. 연쇄적으로 유제품을 재료로 하는 과자, 빵 등의 식품 가격들도 폭등하기 시작하면 전반적인 생필품의 가격과 함께 체감 물가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렇듯 티끌에서 시작된 애그플레이션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연쇄적인 살인 물가를 양산해 내는 무시무시한 현상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애그플레이션


 우리나라 역시 애그플레이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지난달 11일,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국내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인 가락시장 운영일을 주 6일에서 5일 운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애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철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토요일 경매가 없어져 농산물을 이틀 연속 출하하지 못하게 된다면 농가에 쌓아놔야 하는데, 높은 기온으로 인해 상품성이 떨어져 판매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의 농산물 판매자는 “저장시설이 많지 않은 농가에선 복숭아, 양파 등 더위에 약한 농작물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공급 부족으로 이어져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물가 상승세는 이미 농산물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농산물가격지수를 산출하는 시스템 테란에 따르면 지난달 9일 기준 풋고추 도매가는 kg당 1만 3,563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96.12%나 상승했다. △배추 △부추 △토마토 등도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90%까지 비싸졌다. 다수의 전문가는 이같은 고물가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만일 애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유가 폭등으로 인한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경제 성장률이 급하락하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경제 당국은 하루빨리 곡물가 안정을 이룩해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보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정빈 기자 Ι 202310796@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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