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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본 역사상 최악의 테러를 기록하다
  • 이수민 기자
  • 등록 2024-03-04 10: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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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3월 20일, 일본 도쿄 일대에서 대규모 지하철 화학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호흡 곤란 △발작 △시야 협착 등의 증상을 호소했고 곧장 병원으로 이송됐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옴진리교 사린 가스 테러로도 잘 알려진 해당 사건은 13명의 사망자와 6,300명의 부상자를 남겨 일본 역사상 최악의 테러로 회자된다. 새천년을 앞둔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일본 사회로 침습한 신흥종교 '옴진리교'는 당시 여러 강력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며 심한 압박감을 느꼈고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수사력을 분산하고자 했다. 이에 공무의 집성지인 도쿄로 수행원과 운전수를 보내 사린 가스 살포를 지시했지만 머잖아 쇼코의 악행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게 쇼코의 시대가 막을 내리자마자 작가 하루키는 펜을 집어 들고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급박하고 생생했던 그 날의 이야기 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대다수는 슬퍼하거나 분노했다. 옴진리교가 1년 전부터 종말 설파로 신도를 모아 이미 소도시에서 한 차례의 사린 테러 행각을 펼쳤음에도 공안과 사법조직은 태만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행동에 나선 경찰이 추가로 공개한 수사 결과는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리고 말았다. 실행원으로 범죄에 가담한 네 명 모두 의대나 이공계를 전공한 고학력자였기 때문이다. 이른바 ‘엘리트’들이 종말론을 맹신해 대규모 테러를 자행했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기행이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답은 확실하다. 사회 자체가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언더그라운드』 中


 하루키는 새천년의 시작이 마치 잔치가 끝난 후의 고요함과 같았다고 서술한다. 물질적 풍요가 극에 달했을 때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혼란스러운 사회를 이끌어 줄 획기적인 리더가 필요했고 그 길로 아사하라 쇼코에게 모든 통제권을 넘겨주게 됐다. 끝내 그들은 저항 한 번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공범이 된 것이다. 책의 저자는 말미에 이르러 제목 ‘언더그라운드’의 이중적인 의미를 설명한다.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 그 자체를 의미함과 동시에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천년을 누구보다 고대했지만 새천년을 맞이하자마자 큰 무력감에 휩쓸려 타인에게 자아를 의탁해버린 신도들처럼 말이다. 


 반면, 하루키가 만난 피해자들은 테러로 인해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다가올 내일과 사랑을 믿고 개개인의 자아와 역사를 가진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가고자 했다. 하루키는 장장 632페이지에 걸쳐 반복하고 또 강조한다. 인간은 나약하기 짝이 없지만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지키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그것이 미래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이수민 기자 Ι leesoomin22@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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