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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 53시간 동안 감감무소식, 전례 없는 정부 업무 중단 사태
  • 박상준 수습기자
  • 등록 2024-03-04 10: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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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때
지난달 17일 전국 지자체가 사용하는 행정전산망에 장애가 생겨 주민등록등본 발급 등 민원 업무에 차질이 생겼다. 이에 일각에서는 공공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기업을 배제하는 대기업 입찰 제한 제도가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본지는 전산망 장애와 발생 원인을 자세히 알아봤다.

반복되는 오류, 신뢰 잃은 정부


 지난달 17일,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인 ‘새올’과 정부 온라인 민원서비스 ‘정부 24’가 멈췄다. 이에 정부 민원 서류 서비스가 모두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문제해결에 장장 사흘을 소모했으며 원인 발표까지 53시간이 걸리는 등 미흡한 대처로 인해 비판받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네트워크 장비 내 정보를 주고받는 ‘L4 스위치’에 이상이 생기면서 사용자 인증 절차에 문제가 생겼고, 사용자 접속 장애를 불러와 새올 시스템을 통한 민원서류 발급 업무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시스템 마비의 원인이 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장비인 라우터 모듈 속 물리적 손상에 의한 것이라며 앞선 주장을 번복했다. 게다가 17일 첫 마비 사태 발생 이후로도 연달아 접속 장애 사태들이 일어나며 정부가 추구하는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디지털플랫폼정부 구현’과는 멀어진 상태다.


대기업 독점 막는다 … 대기업 입찰 제한


 지속해서 전산망 오류 문제가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공공사업에서 대기업을 배제하는 ‘대기업 입찰 제한 제도’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소프트웨어(이하 SW) 진흥법을 개정해 1,000억 원 이상의 사업에 대한 대기업 계열사들의 공공 SW 사업 참여를 제한했다. 해당 제도는 중견, 중소기업에게도 주사업자의 기회를 제공해 경쟁력을 키우자는 취지로 시행됐으나 전체 사업을 총괄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드문 탓에 각 사업을 쪼개서 발주하는 분리발주 시스템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입찰 제한 제도는 중소기업 사업자 비중을 2010년 19%에서 지난 2020년 58%로 증가시키며 대기업 독과점을 효과적으로 막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난 6월 교육부 4세대 ‘나이스’ 개통 이후 상기 제도에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전 나이스와 달리 4세대 나이스는 시스템 구축 경험이 부족한 여러 중견 기업이 맡게 됐고, 빈번한 시스템 오류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중대한 공공 SW 사업일 경우 대기업의 참여 제한을 일부 완화하는 등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지금과 같이 여러 업체가 참여하는 분리발주 형태의 입찰을 통해 업무를 진행하면 이번 경우처럼 원인 파악에 시간이 오래 소모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정책, 조금 더 신중해야


 이에 지난달 25일 ‘지방행정전산서비스 장애 원인 및 향후 대책 브리핑’에서 행안부 고기동 차관은 “대기업의 공공 IT 사업 참여에 대해 규제 개혁 차원에서 관계기관과 협의를 시작했다”며 1,000억 원의 제한을 700억 원으로 낮추는 등 대기업 참여를 다시금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 밝혔다. 첨단 기술 적용과 신속한 △유지 △보수 △백업 등 효율적인 대민서비스 업무를 위해 세계적 수준의 IT 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의 능력을 활용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대기업 입찰 제한을 완화하는 것이 실효성을 가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해당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는 대기업이 프로젝트를 수주할 경우 중소기업에 하청을 맡겨 일은 중소기업이 하고 대기업이 수수료를 떼가는 행태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이에 고려대학교 안문석(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하청의 하청을 막는 대책을 세우는 한편 공공 SW 분야 전산망은 대기업의 첨단 기술을 도입해 속히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전했다.


 전례 없는 사태가 발생하며 정부가 꿈꿔왔던 디지털 정부는 아직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게 됐다. 중대한 사항인 만큼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가 대기업 입찰 제한 제도의 개혁 움직임을 보이는 지금, 독점 방지와 기술적 문제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때다.


박상준 수습기자| qkrwnsdisjdj@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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