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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보조] 원형 없는 우리 말, 신조어 사용은 한글 파괴가 아니다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12-07 11: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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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품격 갖춘 길잡이의 의무를 다해야 할 공공언어
앞선 지면에서는 유행어·신조어의 해악성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를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분석해봤다. 이어지는 지면은 이를 언어학적 관점으로 접근해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에 본지는 본교 국어국문학과 도재학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현상을 찬찬히 되짚어봤다.

유행어·신조어의 언어학적 의미 


△도재학 교수

 

 유행어·신조어는 한국어학에서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가진다. 우선 조어법 적인 측면에서 신조어들의 형성 방식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예컨대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 ‘야’를 따고, 훈민정음에서 ‘민정음’을 따온 ‘야민정음’과 같은 신조어는 기존 문법만으로는 합성인지 파생인지에 대한 판단이 애매하다. 합성어로 설명하려면 ‘휴대전화’나 ‘밤낮’과 같이 어근의 형태가 유지되면서 결합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조어는 시대 상황을 반영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이를테면 ‘킹 받는다’는 유행어는 ‘열 받는다’라는 표현으로는 더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는 배경이 작동된 것으로, 젊은 세대의 감성 혹은 심리적인 욕구를 반영한다. 포괄적으로는 코로나와 같은 전 지구적 상황을 겪으며 ‘검사 키트’라는 새로운 대상을 표현하게 된 것처럼, 변화되는 사회의 특성도 연구된다. 


원형은 정의할 수 없고 모든 것은 변화한다 


 유행어를 두고 갑론을박이 가장 많았던 부분은 바로 언어학적 지점 이다. 예로부터 인터넷 신조어는 국어 파괴가 심하다는 입장과 이를 우리말 훼손으로 보는 시각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이에 도 교수는 “언어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드러난 논쟁일 뿐, 두 주장 모두 맞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유행어가 ‘문법 파괴’를 일으킨다는 주장은 와해됐다. 언어의 본질은 곧 소통이므로 문법은 기본적으로 구어를 기반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말로 표현되는 것을 음성 형상의 형태로 표기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때문에 유행어가 ‘국어 파괴’가 아닌 ‘문법 파괴’라고 주장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후자는 선후관계가 잘못된 주장이다. 


 유행어를 국어 파괴로 보는 입장은 언어순수주의 관념과 민족주의적, 국수주의적인 관점으로 나뉜다. 두 관점 모두 훼손을 주장하기 전에 ‘언어의 원형’을 정의할 수 없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수주의적 관점의 경우, 일제 식민지배 속 언어적으로 받은 탄압과 독립 운동 차원에서 선조들이 회복한 국어를 지키고자 하는 비교적 설득력 있는 태도임에 틀림없다. 단지 시비와 미추를 떠나 언어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기 때문이다. 


세대 차이의 해결, ‘소통’같은 뻔한 말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사실 해당 논쟁은 일부분 세대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기도 하다. 큰 틀에서 보면 세대 차이도 언어 변화의 일부고,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젊은 세대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 교수는 세대 차이 해결의 핵 심은 “언어 변화의 폭이 좁아지는 게 아니라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는 것”에 있다며 “때문에 대화를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다” 고 설명했다. 


 다만 도 교수는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언어 차이를 극복해야 된다’, ‘SNS가 문제다’ 등의 진단들은 분명 헤드라인 뽑기에는 용이하다. 그럴 듯한 문제 제기인 양 어떤 의식을 심어주기 좋다”고 말하는 한편 “이는 사이비 진단에 가까운 접근법”이라고 답변했다. 언어문화의 변화는 미디어를 통해 사회문제인 양 표면화되지만 실제 그 갈등의 원인이 언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I am 신뢰에요” 정도는 


 사실 세대 차이 해결의 당위성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소통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성세대들은 대부분 실제 젊은 세대와의 대화에서 벽을 느낀 것이 아닌, ‘대중매체’의 언어에서 곤란함을 겪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도덕적으로 시의적절하지 않은 유행어나 비하에 가까운 혐오 표현들이 사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는 뉴스나 예능에서 사기 혐의를 받은 전청조 씨가 만든 유행어 ‘I am 신뢰에요’를 사용해 지탄을 받기도 했다. 


 도 교수는 “앞서 언어의 변화는 자연스럽다고 얘기했으나 ‘공공언어’는 어문 규정을 준수하고 정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 사용의 모델’이 권장된다”고 말했다. 다만 “‘I am 신뢰에요’에 대한 지탄은 그 자체에 의의를 둔 실익 없는 문제제기 같다”며 “공공언어에 기대하는 수준도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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