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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구는 인생을 치환하기 위한 탈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11-23 16: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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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시리즈,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가난한 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 (브래드 피트)은 라디오를 껐다 켜는 것을 반복하며 경기 중계에 집중하지 못한다. 이윽고 뉴욕 양키스에 패배하자, 그는 라디오를 박살 내버린다. 이내 오클랜드는 2002 시즌을 앞두고 주축 선수들을 모조리 빅 마켓 팀에 뺏기기 시작하고, 빌리는 적은 예산으로 어떻게든 팀을 새로 꾸려야 하는 상황에서 고심한다.


 빌리는 곧장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방문한다. 투수 리카르도 런컨의 트레이드 협상 중,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는 척했던 가르시아를 채가려던 흥정은 거의 성공 직전에 이른다. 하지만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인디언스의 통계 전문가 피터 브랜드(조나 힐)의 훼방으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는데, 오히려 이것은 빌리의 눈에 띄게 돼 오클랜드의 부단장으로 스카우트되는 계기가 된다. 피터를 영입한 빌리는 본격적으로 기존의 선수 선발 방식과는 전혀 다른 ‘머니볼’ 이론에 따라 팀을 리빌딩하기 시작한다. ‘머니볼’은 레드 오션으로 자리잡은 스탯으로는 부유한 팀을 이길 수 없기에 저평가받던 새로운 스탯을 선점,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팀을 꾸려야 한다는 이론이다. 빌리는 안타든 볼넷이든 구분하지 않고 ‘출루율’에 주목했고, 야구계의 모두가 미친 짓이라며 그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빌리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야구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머니볼』 中


 작품의 대본은 할리우드 최고의 각본가라 평가받는 애런 소킨이 써냈다. 극작가계의 박찬호라 말해도 과언이 아닌 그답게 폭포수마냥 쏟아지는 대사의 양은 압도적이다. 특히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세련된 명대사들을 끊임 없이 뱉어대곤 하는 그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작 중 위 하나의 대사만이 두 번 나온다. 처음은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20연승째 경기에서 해티버그의 끝내기 홈런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두 번째는 피터가 빌리에게 발이 느린 한 마이너 리그 선수의 홈런 영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무겁지 않은 이 대사가 오히려 큰 울림을 가져오는 것은 왜일까. 


 빌리는 자기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지닌 캐릭터다. 과거 많은 스카우터들의 러브콜과 함께 스타의 재목으로써 프로야구를 시작하게 됐지만, 이후의 선수 인생은 금방 고꾸라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혼, 나아가 딸의 양육권까지 뺏기며 가정생활도 실패했고, 그가 이끄는 오클랜드마저 패배를 상징하는 구단이나 다름없었다. 


 <머니볼>은 야구라는 소재의 탈을 썼지만, 결국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공을 쟁취하지 못한 빌리라는 사람이 뜻밖의 파트너를 만나서 성공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마치 앞선 대사는 “인생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삶에도 이들의 홈런처럼 짜릿한 역전승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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