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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쌀과 빵의 조합, 넌 누구니?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11-23 16: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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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량안보와 쌀 수급균형,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쌀빵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빵과 면을 비롯한 밀가루 음식이 자주 밥상에 올라오게 되면서 밥의 민족은 명성을 잃었다. 현대인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동·서양의 식문화 조합은 ‘쌀빵’이라는 전례 없는 식품을 만들어냈다. 이에 본지는 제빵 시장에서 쌀빵의 입지와 가루쌀 가공 산업 활성화에 지원하는 국가의 궁극적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풍년을 걱정이라 읽는다


 한창 수확하고 기뻐해야 할 시기인 쌀 풍년이 찾아와도 농부들은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한 지 오래다. 바로 쌀 가격 때문이다. 쌀 생산자들이 쌀값 폭락에 항의하며 시위까지 벌이던 건 불과 작년이다. 소비가 감소했으므로 시장 논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벼 농사를 줄이고 논이 없어지는 것에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쌀이 주식인 우리나라는 농경지의 51%가 논이기 때문이다. 결국 끝내 쌀까지 수입에 의존하게 될 때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쌀에 대한 정부의 시장 개입은 필연적이다. 국내 쌀값은 지난 2021년 8월, 20kg 기준 5만 9,000원을 유지하다가 작년 8월에는 생산 과잉으로 단 1년 만에 4만 7,000원으로 약 20%가량 떨어졌다. 비록 쌀의 공급 과잉이 만성적인 문제란 걸 감안해도 이 감소폭은 지나치다. 정부에서도 절반이 넘는 논의 비율을 의식해 논에서 밭농사를 지으면 밭작물 전환 직불금을 지급하면서 쌀 생산량 감소를 유도해 왔지만, 상황이 호전되진 않은 모습이다.


가루쌀을 통해 나타난 새로운 탄생, 쌀빵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본지는 학생들의 식습관 변화에 대한 간단한 설문 조사를 시행했다. 학생들은 △배달 △밀키트 △군것질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쌀 소비가 줄었다고 답했다. 이러한 식습관의 변화를 감지한 것은 비단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0년과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 사회의 쌀 소비량은 20kg나 감소한 반면, 같은 시기에 측정된 밀가루 섭취량은 오히려 2kg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곧 밀가루 음식 섭취가 건강 악화를 앞당긴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제기됐고 여론은 건강식을 찾기 시작했다. 건강한 식습관 구축이 대중의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여러 밀가루 대체품이 생겨났고 그 결과, 쌀빵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쌀빵이 개발되기 전, 쌀은 밥과 떡의 주재료로 사용되곤 했다.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찰기 있는 쌀이 필요했기 때문에 쌀을 물에 불리고 찌는 식의 조리법이 오랜 기간 성행했다. 그러나 제빵에는 밀과 비슷한 가루 형태의 원료가 필요했고 그렇게 ‘가루쌀’이라는 신품종이 탄생하게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가루쌀이 밀과 비슷한 전분 구조를 띠고 있어 본래 빵의 쫀득한 식감을 살릴 신장성 보완제 양만 조절한다면 충분히 밀을 대체 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처럼 가루쌀의 등장은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인해 줄어드는 쌀의 소비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됐다. 


쌀빵, 식품계의 낙동강 오리알이 되다 


 웰빙 트렌드가 식문화를 주도하면서 쌀빵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쌀빵이 밀가루빵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식감에 있다. 밀과 보리에 들어있는 단백질 성분 ‘글루텐’이 쌀빵의 원자재인 가루쌀에는 없기 때문이다. 글루텐은 물과 섞이며 점성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빵의 쫄깃함에 원천이 된다. 반면, 가루쌀에는 글루텐이 거의 없어 부드럽고 쫀득쫀득한 식감을 구현해 내기가 매우 어렵다. 물론 ‘활성 글루텐’을 첨가하면 빵과 비슷한 식감을 낼 수 있지만, 이는 100% 쌀빵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쌀빵의 장점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다년간의 연구를 통해 글루텐 첨가가 필요 없는 가루쌀이 개발됐으나 이번에는 가공 공정으로 인한 원가 폭등 우려가 발목을 잡았다. 따라서 제 아무리 쌀 가격이 폭락했다고 해도 여전히 밀가루보다는 가격대가 있고 원자재 부담이 따르기에 소비자의 선택을 받긴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해, 쌀빵은 현재 맛과 가격 측면에서 소비시장에 받아들여지기 애매한 위치다.


밀가루 종속국에서 살아남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루쌀로 밀가루를 대체하는 것이 수입 밀 의존도를 낮추고 식량 자급률을 높여 궁극적으로 쌀 과잉 공급 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식량정책이 현 정부가 내린 결론이다. 


 다만 가루쌀이 수입 밀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극복해야만 한다. 이는 앞서 설명한 글루텐의 부재다. 글루텐이 사람에 따라 알레르기나 소화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루텐 프리’(Gluten Free) 시장이 커지고 있는 지금, 정부는 이 상황을 오히려 가루쌀 보급의 기회로 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미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식량종속국에 한걸음 가까워졌다. 


 경제 성장과 시장 개방은 농업을 빠른 속도로 축소시켰고 지난 2020년 확인된 곡물자급률은 22.5%로, 어느새 수입 의존이 대부분이다. 특히 국내 밀가루 소비량은 연간 200만t에 이르는데, 국내 생산량은 단 1만 6,000t으로 밀 자급률은 0.8%에 불과하다. 무려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입 의존도가 높을수록 국내 물가 상승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정부는 국산 가루쌀을 앞세워 밀가루를 밀어내기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냥 많이 쓰자는 게 아니라, 빵을 만들자는 거야


 이미 가루쌀 증산 계획과 쌀 시장격리 비용으로 예산이 적극 투입 중인 것으로 보아 정부의 정책 의지는 강력해 보인다. 설령 계획대로 수입 밀을 대체하진 못한다 해도 가루쌀이 국산 쌀 소비를 늘린다면 쌀 수급 안정에는 큰 도움이 된다. 


 쌀 가공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이명박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 지원 속에 ‘쌀 가공 산업 육성계획 5개년’이 추진돼 온 바 있다. 그러나 가루쌀 증산이 결여된 산업 활성화는 즉석밥·도시락류의 점유율을 높일 뿐 그 외 사용처에서의 실질적인 효과는 미비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까지 집계된 연간 제빵용 쌀 소비량은 밀가루 소비량의 1~2% 수준에 그쳤다. 지금의 쌀 소비량 촉진 정책은 쌀빵을 고려하지 않으면 밀 수입 의존도 문제까지는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결과다.


그럼에도 국가는 쌀빵 사랑 중 


 정부는 밀 수입 의존 문제를 해결하고자 쌀 재배 면적 사업을 확장해 쌀빵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힘쓰고 있다. 개인의 호불호는 따르겠지만, 지자체도 차원에서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쌀빵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움직임이 크다. 


 지난 8월 농림축산식품부는 팝업스토어 ‘반짝 매장’ 그리고 가루쌀과 함께하는 ‘빵지순례’ 행사를 열어 전국 19곳의 동네 유명 빵집에서 만든 쌀빵을 구매할 수 있는 행사를 진행했다. 경기도는 경기쌀빵지도, 경기쌀빵 홍보영상 등을 제작한 데 이어 쌀빵 제품 개발 확대를 위해 지난 3년간 매년 쌀베이킹 콘테스트와 경기쌀빵전을 개최해 쌀 소비 확대를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쌀 생산량을 증가시키며 건강한 빵을 소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쌀빵은 국가가 나서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과거에는 △밥 △빵 △과자 등이 쌀을 반목하는 관계였다면 이젠 공생하는 관계로 변화했기에 앞으로의 전망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내돈내산 쌀빵 체험기


 본지는 직접 쌀빵을 맛보고 솔직한 감상평을 남기고자 한다. 쌀빵은 구하는 것부터 곤욕이었다. 100% 가루쌀로 구운 빵을 직접 구매하고 싶었기 때문에 늘 역에서 빵 냄새를 풍기는 매장들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종각역부터 △서울역 △시청역 △을지로입구역 △충정로역까지 발걸음을 옮겼음에도 코로나19를 견뎌낸 빵집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역 주변의 매장들을 찾았으나 글루텐 프리가 아니거나, 글루텐 프리지만 코코넛의 함량이 더 높거나 하는 등 온전한 쌀빵을 찾기는 어려웠다. 쌀빵을 취급하는 매장 자체의 수가 적어 먼 거리 탓에 이 이상 직접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해 결국 배달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쌀빵의 가격은 알고 있었지만 다소 부담스러웠다. 특히 크림치즈와 체다치즈를 채워 넣은 오징어먹물쌀빵은 6,300원으로,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도 본 경험이 없는 센 가격대였다. 비싼 값을 주고 어렵사리 공수해온 쌀빵인만큼 맛에 대한 기대감은 치솟았다. 처음 쌀빵을 접했을 때는 시중에 판매하는 밀가루빵과 견주어봤을 때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특히, 크림치즈와 단팥을 곁들인 쌀빵은 쌀로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맛있었다. 그러나 정작 100% 가루쌀로 만든 식빵을 먹고 나니 빵과는 거리가 멀었다. 순쌀식빵은 되려 텁텁한 백설기에 가까운 맛이었다. 쌀과 빵의 조합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담백하고 오묘한 동·서양의 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져 꽤나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본지는 쌀빵을 직접 먹어보며 밀의 대체 가능성을 엿봤다. 쌀 가공 산업은 빵을 넘어 과자나 면류 등 더 폭넓게 활용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정부는 수입 밀의 10%를 가루쌀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만약 계획대로 가루쌀이 공급돼 전량 제품화된다면 국내 연간 가루쌀 소비량은 4년 만에 7배가량 늘어나게 된다. 전례가 없는 만큼 국내 유수한 식품업체들의 잠재력이 빛을 발해 식량 안보와 쌀 수급 균형을 이룩하길 기대한다.


이수민 기자 Ι leesoomin22@kgu.ac.kr 

홍지성 기자 Ι wltjd0423@kyonggi.ac.kr 

글·사진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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