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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올진 세상] 외면받은 작가들을 위한 단결된 목소리, 작가노조준비위원회 출범
  • 박상준 수습기자
  • 등록 2023-11-23 16:2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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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권리 보호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노동자의 권리와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작가들의 처우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과거 그대로 머물러있다. 이에 작가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본지는 작가노조준비위원회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들이 처한 현실을 자세히 알아봤다.

열악한 처우 속의 작가들


 현재 작가들은 △불공정 계약서 작성 △턱없이 낮은 원고료 △보호받지 못하는 저작권 등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지난 202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작가 약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학분야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판사와의 계약 과정에서 △구두로만 청탁받은 경험(56.6%) △원고료를 지급 받지 못한 경험(64.2%) △인세를 현금이 아닌 기타 물건으로 지급 받은 경험(63.5%) △무리한 원고 집필 일정을 요구받은 경험(75.9%) 등이 있었다고 응답하며 많은 작가가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불합리한 처우는 계약 이후에도 계속됐다. 출판 이후에도 자신의 책을 대량으로 구매할 것을 강요(84.1%)받았으며 이들 중 91.5%는 2차 저작물 전송권 계약 거부 시 출판 계약이 중도파기되는 등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지난 3월 목숨을 끊으면서 작가들의 열악한 상황이 사회에 드러났다. 2007년 이우영 작가는 형설출판사와 사업권 양도 계약을 맺었는데 당시 계약서에는 ‘작품 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서를 장진혁 씨(형설퍼블리싱 대표)에게 양도한다’, ‘이를 어기면 이 작가가 계약금의 3배를 위약금으로 물어낸다’와 같은 불공정 계약 조항이 담겨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작가가 출판사로부터 15년간 받은 정산 금액은 고작 1,200만 원 정도였다. 이후 생활고에 시달린 이 작가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개인 작품에 사용하자 이를 문제 삼아 계약서 내 조항을 근거로 지난 2019년 6월 수억 원대의 소송을 제기했다. 긴 법정 다툼으로 결국 이 작가는 지난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가들의 어려운 사정은 출판사와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업계 내부에 깊이 자리 잡은 위계질서 문화도 작가들을 힘들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특히 문단 내 성폭력 문제는 작가들 사이에 큰 고충이다. 문단에 오래 몸담은 작가들의 위계질서와 영향력을 이용한 성폭행 사건들이 ‘미투 운동’으로 불거져 문화체육관광부가 제시한 출판 예시 계약서에도 들어갈 만큼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


 한국 작가들, 노동자와 예술인 어디에도 인정받지 못해


 그러나 한국과 달리 해외의 경우 예술인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있다.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들로 구성된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이 AI의 발전으로 직업 예술인들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다며 집단 파업을 시행했다. 그 외에도 독일의 예술인노동조합(GDBA)의 활동, 프랑스의 ‘문화예술인 근로협정’ 파업 등 세계 여러 정부에서 예술인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후 한국에서도 예술인들의 불합리한 처우 개선을 위한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영화 △웹툰 △방송 △연기자 등 다양한 예술인들을 위한 노조가 기존에 존재했으나 예술인들의 환경 개선을 위한 법제도 개선이나 공동 대응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예술 분야의 사람이 모인 ‘문화예술노동연대’가 출범하게 됐다. 이후 지난 2020년 12월 ‘예술인 복지법’ 개정에 따라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는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가 도입돼 △고용보험 당연 가입 △서면계약 체결 △실업급여 및 출산 전후 급여 △보험료 지원 등의 권리를 보장받게 됐다.


 하지만 이런 예술인들의 권리 상향 속에서도 작가들은 소외받는 실정이다. 작가는 업무 특성상 눈에 보이지 않는 부상이 많아 산재보험의 적용이 어렵다. 또한 거래 관계에서 저작권이 오가기 때문에 고용보험 미적용 등 타 예술인과 비교해 개선된 법의 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과거 그대로의 처우에 놓여있다. 더불어 작가와 출판사는 작품의 계약을 통해 관계가 형성되기에 타 분야의 노사 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적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작품 단위의 계약은 동일하나 소속사를 통해 권리를 보호받는 타 예술인과의 차이점이 더 부각된다. 동일한 실태조사에서 ‘작가는 노동자이며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64.9%가 동의하며 문학을 비롯한 출판계 작가들은 자신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노동조합 형태의 권리 보장 수단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다.


작가노조준비위원회 출범


 이처럼 출판사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계약이나 관행에 대한 문제가 끊이지 않자, 20년 차 편집자이자 작가인 안명희 씨는 지난 3월 작가노동준비위원회(이하 작가노조)를 조직하며 여러 작가의 목소리를 단결코자 했다. 안 작가는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작가 권리 보호에 심각성을 느끼고 ‘집필 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동료 작가 3명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작가노조 출범 계기를 밝혔다.


 작가노조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전, 시인이나 소설작가뿐만 아니라 방송작가, 웹툰작가 등 다양한 작가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 9월 14일 집담회를 열며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해당 회담에는 장르를 불문한 여러 작가들이 모였고 자기소개를 통해 자신의 장르를 소개하며 내재하는 문제점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또한 △원고료 △저작권 △위계질서로 인한 문제 등 공통적인 문제점들을 언급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에 대해 안 작가는 “작가노조가 출범함으로써 집단화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 외에도 안 작가는 △작가들의 협상력 진작 △저작권 등 소송 및 분쟁 강화 기대 △문학 장르 간 연대 지원 제공 등의 작가노조가 출범함으로써 기대되는 점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작가노조 활동으로 인한 불이익 △담합 문제 △작가들의 참여 저조 등의 우려에 대해선 아직 정식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고민과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정부가 근로기준법에 의거해 작가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조 △결성 △교섭 △파업과 같은 것들이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거처 나가야 할 난관을 내다봤다.


개선책은 나오지만, 여전히 관심이 필요한 시점


 정부는 지난 2018년 문단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자 △표현의 자유 △성폭력 △직업적 권리 등을 다룬 예술인 권리 보장법을 시행했지만, 시행 이후에도 검정고무신 사건이 터지는 등 실효성이 없는 대책 마련으로 인해 비판받은 바 있다. 안 작가는 반복되는 예술인 불공정 사태 속 실효성 없는 제도만 개선하는 것이 아닌 예술인 사회안전망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현재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또는 산재보험 적용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외에도 저작권법 개선을 통한 작가들의 권리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제도적 측면을 떠나 권력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작가 개인은 권력 주체인 출판사에게 대응할 힘이 없기 때문에 출판사의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 정부와 같은 다른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뤄지기 위해선 우선 작가노조가 정식으로 인정받아야 함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안 작가는 “현재 작가노조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단체이기에 작가노조가 준비위원회에 그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안 작가는 이 외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노동조합법 개정을 통해 작가노조의 파업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작가는 “현재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정식으로 노조를 만드는 것”이라며 “더욱더 활발한 활동을 통해 작가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앞으로의 활동 포부를 밝혔다.


 지금까지 수많은 문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의 권리 보장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여러 목소리를 하나로 결집하기 위한 작가노조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작가노조가 원활한 활동을 이어나가기란 쉽지 않다. 이처럼 작가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금, 작가의 권리 보장을 위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박상준 수습기자 Ι qkrwnsdisjdj@kyonggi.ac.kr

임현욱 수습기자 Ι 202310978lh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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