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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더하기] 강렬한 노래가 가득한 세상에, 편안한 노래의 등장이라
  • 홍지성 기자
  • 등록 2023-11-08 12: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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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계는 지금 이지 리스닝 열풍
자연스럽고 가벼운 것들이 사랑받는 요즘,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장르는 특유의 몽글몽글한 느낌으로 청자에게 힐링을 선물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물 흐르듯 삶에 스며들어 자꾸만 듣고 싶게 만드는 이지 리스닝의 매력을 오목조목 짚어보고자 한다.

뉴에이지로 시작된 편안한 분위기

 

 뉴에이지(New-age) 음악은 20세기 말 무렵 기존의 △사회 △문화 △종교에서 공허함을 느낀 사람들이 이를 탈피하고자 한 ‘뉴에이지 운동’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격변의 움직임 가운데 탄생한 잔잔한 뉴에이지 음악은 주로 어쿠스틱 악기로 연주한 요가, 명상 음악을 의미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흘러 현대의 뉴에이지는 △오케스트럴 팝 △엠비언트 뮤직 △퓨전 재즈 △세미 클래식까지 아우르는 이른바 ‘듣기 편한 연주 음악’을 포괄할 만큼 그 의미가 넓어졌다.


 최근 K-POP 시장은 뉴에이지의 하위장르인 이지 리스닝을 나른한 댄스곡으로 재해석해 이지 리스닝 음원 강자 그룹 ‘뉴진스’를 만들었다. 그 결과, 데뷔곡 「ATTENTION」을 비롯한 「HYPE BOY」, 「DITTO」 등 수많은 명곡이 차트를 휩쓸었고 업계에 이지 리스닝 붐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이지 리스닝 트렌드는 전자 비트를 베이스로 한 일렉팝을 뒤로 하고 전자 피아노를 이용해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신스팝의 시대를 열어 국내·외 대중음악에서 막대한 영향력 을 행사하고 있다.

 

K-POP에 이지 리스닝 한 스푼

 

 △브라운 아이즈 △박효신 △SG워너비 같은 남성 보컬 뮤지션이 큰 인기를 끌었던 2000년대 국내 음악계는 R&B풍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가 주류 음악에 속했다. 그러나 당시 일각에서는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가미한 일명 ‘소몰이 창법’이 단일화된 감정 표현에만 능해 대중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결국 미디엄 템포 발라드는 세기말 추억의 곡으로 남았다.


 이러한 흐름 속 후렴구의 반복된 가사와 멜로디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은 ‘훅(hook)송’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특히 수많은 훅송이 쏟아져 나왔던 2010년대는 △벌스(Verse) △후렴 △엔딩이 명확한 구조를 갖춘 3분 남짓의 곡에 △랩 △보컬 △고음이 알차게 들어가 있다. 이에 자극적인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베이스에 칼군무를 추는 퍼포먼스 음악으로 포화된 K-POP 시장의 소비자는 청각적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이지 리스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됐다. 



 이지 리스닝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빌보드 메인차트 입성을 이뤄낸 그룹 ‘FIFTY FIFTY’의 곡 「CUPID」를 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거친 사운드, 중독적인 후렴구의 보편적인 K-POP 음악 스타일과 달리 고음과 과한 기교를 덜어낸 판단이 곡의 흥행에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 그룹의 심오한 세계관 혹은 특이한 그룹 콘셉트에 난해함을 느끼는 대중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잃어버린 대중성을 잡고자 했던 K-POP 시장의 수장들은 시끄럽고 강렬한 사운드를 벗어나 이해하기 쉬운 리듬과 표현으로 눈길을 돌렸다.

 

각박한 세상 속 잠시 쉬어가는 시간

 

  이지 리스닝이 트렌드가 된 데는 음악 유통 구조의 변화도 한몫했다. CD와 같은 음반의 소비량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노래를 접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결과, 짧은 길이의 곡이 음원 성적 창출에서 유리해졌고 지난 6월 음원 차트 상위 15곡 중 이지 리스닝이 속한 곡이 총 7곡으로 많은 발매가 이뤄졌다. 


 이는 단적으로 뉴진스 앨범 의 타이틀곡 「Super shy」가 2분 35초임에도 가장 긴 곡에 속하며 악기 연주 등으로 곡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꾸는 인털루드 트랙 「Get up」은 단 37초에 불과하다는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이러한 현상을 소셜 미디어에서 통용되는 숏폼 콘텐츠를 통해 음원을 접하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분을 넘지 않는 지수의 「꽃」 역시 지난 3월 31일 발매 직후, 챌린지를 통해 2만 3,000명의 대중에게 공유됐으며 약 3개월가량 차트 상위권에 머무르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둬냈다. 이처럼 이지 리스닝 장르는 대중의 취향이 변하고 인터넷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각광 받는 하나의 트렌드로 굳어졌고 현대 음악의 흥행 보증 수표가 됐다.

 

 오늘날의 대중음악은 친화적인 음악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어쩌면 뮤지션의 독창성으로 과열됐던 K-POP 씬에 가볍게 찬물을 한 번 끼얹음으로써 대중음악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중이 한데 모여 음표 속 위안과 즐거움을 찾는 장을 마련해준 이지 리스닝이 앞으로도 활발한 행보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홍지성 기자Ιwltjd0423@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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