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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람으로서의 직업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09-14 21: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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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해변의 카프카>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의 비평이 큰 이슈가 된 적 있다. 꼼꼼한 논리로 저자의 극우 성향을 추적하는, 제법 설득력 있는 책이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현재에 이르러 거의 일축된 의견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오래전부터 이 같은 강도 높은 칼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비난 속에서도 소설가로서의 사적 견해에 대해서는 항상 침묵을 일관해온 그가 최초로 독자들에게 말을 건넸다는 점에서 이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의미가 있다. 



 그의 견해는 현실적이다. ‘문인’이라는 구태의연한 허상은 없고 말 그대로 생업·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논한다. ‘직업’이란 결국 취미나 열정과는 다르다. 오랫동안 영위할 수 있는 지속력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내야 한다. 이 책을 쓰던 당시 저자는 35년간 소설가라는 직업을 통해 밥그릇을 채워왔다. 지속성과 경제적 효용가치의 측면에서 그의 삶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논할 자격은 충분하다. 


 다만 이 책이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 지는 가늠할 수 없다. 어떤 방법이나 해답을 전한다기보다는 저자의 지난 35년을 정리한 회고록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설을 프로레슬링에 비유했다.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오래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말대로 한두 편 소설을 쓰는 것은 쉽지만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은 어렵다.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 속 축적된 경험과 상상력으로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금세 밑천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 점을 짚어낸 것에서 저자가 이 직업에 어떤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소설을 쓰면서 내가 가장 즐겁게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마음만 먹으면 나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中 


 <해변의 카프카>를 썼을 당시 그는 쉰을 넘긴 나이였지만 주인공은 열다섯 살 소년이었다. 그는 글을 쓰면서 다른 삶을 경험하는 ‘소설가만의 특권’을 잔뜩 체감하는 즐거움 덕분에 이 직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얼마나 고된지를 말하는 한편 이것이 저자가 진정 원하는 일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모두 마찬가지다. 쉬운 직업은 없지만 원하는 일은 있다. 저자에게는 그것이 소설가일 뿐이다. 결국 그가 설명하는 소설가로서의 자질과 태도라는 것은 그저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기를 해 체력을 기른다거나, 매일 출퇴근하듯 앉아서 글을 쓰는 꾸준함 같은 것들이다. 문예창작학과에서 등단을 꿈꾸고 있는 기자가 아니더라도 ‘직업인’으로서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에 가깝다. 하루키의 직업론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확장된 사견과 함께 그의 지난 35년을 전부 읽고 나면, 그가 성실한 ‘작가’ 이전에 성실한 ‘사람’내지 ‘직장인’처럼 느껴진다. 지난 6일 발매된 ‘생계형 소설가’ 하루키의 새로운 장편소설은 어떨지 기대가 가중된다.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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