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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History]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 경인선 개통
  • 박상준 수습기자
  • 등록 2023-09-01 17: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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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의 발자취 너머로, 경인선 개통으로 시작된 교통혁명
개화의 상징이었던 기관차의 도입. 경인선 개통을 통해 수도권으로의 교통이 편리해지며 국가 발전을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점에서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본지는 오는 18일(월) 경인선 개통 124주년을 맞아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최초의 철도 노선 경인선 개통


1899년 9월 18일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노선인 경인선이 개통됐다. 경인선은 현재 운행중인 열차 중 유일하게 19세기에 만들어져 오늘날에도 서울특별시 구로역과 인천광역시 인천역을 잇는 약 27km 길이의 철로다. 


 당시 조선이 더욱 발달하기 위해서는 서울과 항구를 직접 연결하는 대량 운송 수단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항구와 가장 가까웠던 제물포(현 인천광역시)와 서울을 잇는 철도를 계획했다. 이에 대한제국의 철도 부설을 주목하고 있던 미국은 1887년 뉴욕 조선영사 프레이저를 통해 전등 및 철도 신설계획 요청의 공문을 보냈다. 이후 1891년 3월 고종은 기업가인 제임스 모스와 ‘철도창설조약’에 대한 협상을 했다. 철도 부설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본 정부 또한 무단으로 대한제국과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고 경인선 철도 부설을 포함한 이권을 가져간다는 ‘조일잠정합동조관’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청일 전쟁 이후 삼국간섭에 의해 일본의 영향력은 약화되며 철도 부설권은 제임스 모스에게 넘어가게 됐다. 


 1897년 3월 경인선이 착공됐다.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던 와중, 일본은 부설권을 가져오기 위해 미국에 ‘조선이 정치적으로 어려워 곧 전쟁이 날 것이다’라는 거짓 소문을 흘렸다. 이로 인해 미국 투자자들이 모스에게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하며 철도 부설은 자금난을 겪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기술적인 문제로 공사가 중단됐고 1898년 5월에 일본의 경인철도합자회사가 부설권을 1백만 달러에 인수했다. 이렇게 부설권을 양도받은 일본이 1899년 9월 18일에 노량진으로부터 인천까지의 일부 노선을 개통했고 이로 인해 마차로 12시간 거리였던 인천과 서울이 1시간 30분 거리로 좁혀지게 됐다.


경인선 개통이 불러온 변화의 바람


경인선이 개통했음에도 서민들은 기차를 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비싼 운임 때문이었다. 운임은 △1등 객차 1원 50전 △2등 객차 80전 △3등 객차 40전으로 세분화됐다. 당시 쌀 1가마의 가격이 4원이었음을 생각하면 1등 객차는 현재 가치로 약 6만원 정도의 가격이었다. 일본 정부는 더 많은 사람의 이용을 위해 관광 목적의 홍보를 자주 진행했지만 아용객의 대부분이 외국인과 귀족층에 머물렀다.


 1905년 경인선에 이어 경부선과 경의선 등 철도망이 확충되자 노선이 어느 지역을 통과하는지에 따라 도시의 부흥 또는 쇠락이 결정됐다. 항구를 중심으로 했던 사회 경제가 경인선 개통의 영향으로 철도가 통과하는 도시와 정거장으로 옮겨갔다. 결과적으로 철도 개통은 △산업 개발 △인구 증가 △도시 촌락의 개선 등 긍정적인 영향을 불러왔다.


일제의 잔재였던 경인선, 수도권 교통의 중추로 발돋움


경인선 개통은 근대적 교통 기관의 도입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본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침투하게 되는 발판이기도 했다. 빠른 운송수단을 이용해서 조선의 물자를 효율적으로 수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을 지니는 탓에 지난 2018년, 경인선이 개통된 9월 18일이었던 철도의 날은 철도국 설립일인 6월 28일로 변경됐다. 일제의 잔재라는 비판의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에도 경인선은 미군정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교통부의 관할로 이전됐다. 1973년에는 교통난 해소를 위한 수도권 전철화 정책의 일환으로 전철로 전환됐으며 동시에 서울 지하철 1호선에 편입됐다. 이에 따라 경인선은 현재까지도 경인국도 및 경인고속도로와 함께 서울에서 인천을 잇는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오는 18일 경인선 개통일을 맞아 다시금 경인선 개통이 가져온 교통의 편리성과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면 어떨까.


 박상준 수습기자 | qkrwnsdisjdj@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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