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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찾아서, 심춘(尋春)놀이
  • 편집국
  • 등록 2022-03-02 10:00:54
  • 수정 2022-03-15 09: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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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멀게 느껴지지만 이미 동지부터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졌다. 하나의 양이 비롯되었으며(一陽始生), 그 질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무심한 천지는 자신의 운행을 멈추지 않는다. 우주의 무한 반복이 요점이다. 동지가 되면, 땅 속의 나무뿌리를 캐보면 새로운 싹이 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하기에 예전 사람들은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려던 것이 우세하였다.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도 같은 원리에서 있었던 세시의 흔적이었으며, 여기에 예수 탄생이 결부된 것이라고 한다. 봄은 그때부터 비롯된다. 


 이제 정월 대보름날을 앞두고 있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던 봄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산에 언 땅이 녹고, 땅이 질컥이고 있다. 그 속에 많은 생명체가 꿈틀대고 있다. 봄바람이 일면 그들도 자신의 감춘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예견된다. 우주의 반복에 과거와 미래가 함께 하고 있으며, 인간도 그것의 질서에 종속되며, 벗어날 수 없다. 계절은 바뀌지만 이처럼 반복되고 순환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거듭 생각하게 된다. 


 봄을 찾아서 간 긴 예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이가 봄을 찾아서 신명나는 심춘 여행을 떠났다. 봄은 멀리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문밖을 나서서 구름이 감돌고 있는 산 고개로도 가보고, 언덕배기에 어리는 아지랑이를 찾아서 허위허위 숨이 가쁘게 다녔다고 한다. 짚신도 다ᇙ아 미어지고, 마음도 시난고난으로 흩어져 헤어지고, 마침내 피곤함에 절어서 아무리 찾아도 봄은 찾을 수 없었다. 봄을 찾아 집을 나간 뒤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을 떠난 뒤에 다시 집으로 되돌아오니 무엇인지 모를 아름다운 향기가 자신의 코를 강하게 찔렀다. 자신의 집에 있는 매화나무에 매화가 가득피어 그 향내가 자신을 압도한 것이다. 자신의 집에 있는 매화나무에 무르녹은 향기를 생각하지 않고, 멀리 에둘러 다닌 자신의 내력과 행적이 새삼스럽게 부끄럽게 여겨졌다. 진실은 멀리에 있고, 행복은 남다른 곳에 있다고 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었다. 자신이 진정한 주체이고 참된 자아임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의 자아가 각성해야 할 이유이다. 


 이 일화는 선가에서 긴요하게 생각하는 ‘심춘(尋春)’이라고 하는 화두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송나라 시대의 비구니가 자신의 깨달음을 증득한 오도송(悟道頌)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비구니는 도를 깨우치고 나서 이렇게 노래하였다고 한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았으나 봄은 보지 못하고 신은 미어지고 언덕배기에 있는 구름까지 두루 다녔네 집으로 되돌아오니 매화 향기가 웃으며 반기니 이미 봄은 매화 가지에 무르녹고 있었네(終日尋春不見春 芒鞋踏破隴頭雲 歸來笑拈梅花嗅 春在枝頭已十分)’이다. 


 자신을 찾는 것과 봄을 찾는 것을 함께 견주면서 일러준 진실은 결국 자신의 발견은 가까운데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으며, 집을 나서서 헤매지 말고, 자신이 있는 그곳이 결국 참다운 길로 나아가는 지름길임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이 요체이다. 이미 지난 것에 얽매이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것에 걱정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굳세게 딛고 가야 할 본질적인 무엇이다. 


 우리를 위협하던 코로나의 감염병도 자신의 전파력이 강해지면서 우세종으로 자리잡았으나 이제 그 힘도 미약해지고 있다. 오미크론이 적절한 사례이다.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재앙이 이제 비로소 끝을 보일 것인지 알기 어렵다. 대학 교정을 뜨겁게 달구게 될 신입생을 맞을 입학식이 곧 열릴 예정이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졸업식도 아울러 있을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를 오롯하게 하던 자신만의 진정한 봄을 찾아야 한다. 나라가 우리에게 해주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 이제 불을 보듯이 환하게 되었다.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것마저도 그렇게 신명나는 일은 아니다. 그러한 지도자의 지도력에 부질없이 기대지 말고, 우리의 일을 성실하게 하면서 자신만의 신명을 누리고 참다운 삶을 사는 것이 가장 긴요하다. 


 우리의 봄날은 언제일 것이고, 언제이고, 언제였던가? 그것은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있어야 할 것과 있었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인생의 봄날은 가게 마련이지만, 스스로 허망함을 벗어나서 현재가 진정한 봄날임을 알아야만 한다. 하루하루 봄날을 찾아서 긴 겨울을 벗어나는 번뇌망상을 지우는 일이 필요하다. 아까운 시간 탕진하지 않고 바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참다운 깨달음의 신명일 터이기 때문이다. 


 이상화가 시로 말하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고 하였다. 우리의 빼앗긴 들에도 과연 푸른 웃음과 푸른 설움이 함께 할 수 있을 것인가! 헛된 일에 봄 마음과 참다운 넋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푸른 날의 언약이다. 그 푸른 봄날도 결국 여름에 밀려갈 예정이다. 엄혹한 질서와 반복에 눈길을 주어야 한다. 무더운 여름도 마침내 가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겨울에 의하여 가을도 몰려갈 것이고, 겨울은 다시 봄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누가 진정한 주인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하고 인간 없이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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