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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당당함은 없다
  • 신주희
  • 등록 2019-04-01 11:38:33
  • 수정 2019-04-01 11: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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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었는데 망했어.’ ‘찍은 문제 다 맞았어.’ 전자는 운이 나쁜 사람이고 후자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과연 그럴까. 사람들은 현저히 낮은 확률로 당첨되는 복권을 언제나 당첨될 것처럼 구매한다. 운이 좋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토요일 저녁 9시에 복권에 당첨되지 않았음에 좌절하고 월요일이 오면 월요병을 이겨보자며 복권을 다시 구매한다. 그렇게 일주일을 버틴다. 그 일주일 안에 비가 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복권에 당첨될 확률의 몇 배나 될지 가늠도 안 되지만 ‘오늘은 비가 올 확률이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높으니까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서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몇 명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대게 선택을 운에 맡긴다.

 

 기자는 인생에 운을 점쳤다.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노력한 만큼의 대학에 최초합격으로 왔고 노력보다 조금 수월하게 신문사에 들어왔다. 그렇게 수습기자로서 하던 대로 글을 쓰고 하던 대로 인터뷰를 잡았다. ‘내 글은 완벽하고 인터뷰는 원하는 날짜에 잡힐 것’이라는 안일함 뒤에 숨었다. 꼭꼭 숨어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기자는 좌절했다. 왜냐하면 안일함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때문이었다. 거울에 비친 기자는 몸에 맞지 않는 큰 옷을 입은 채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그 큰 옷은 자만심이었다. 그래서 오늘 전화해 내일 인터뷰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며, 마감 전날 밤을 새워서 기사를 쓰고 마감 직전에 검토했다. 또한 글은 많이 쓰고, 사진은 많이 찍어서 나중에 분량에 맞춰 줄이자고 다짐했다. 이는 모두 그럴싸한 자만심이었다. 짧은 과거의 운에서 비롯된 이기적 합리화였다. 그러나 신문사에서는 반듯한 체계성과 계획을 필요로 했고,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러지 못한 기자는 어설프게 끼워진 굴러온 돌이었다.

 

 기자는 박힌 돌에 제안했다. 자리를 조금만 내어준다면 배우겠다고. ‘이렇게 하면 되겠지’에서 ‘이렇게 하면 될까?’로, ‘무조건 할 수 있어 나니까’에서 ‘이걸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하지?’로 오만한 마침표는 겸손한 물음표가 됐다. 그 결과, 기자는 신문사 생활을 하며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찾아가고 있다. 더불어 내 모습이 다른 이에게 보여도 움츠리고 부끄럽지 않게 오늘도 내 한계를 뛰어넘으며 노력한다. 기자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행운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게 나다. 이제 오롯이 나로서 당당하다. 당연한 당당함은 없다.

 

 신주희 기자 │sin7203@k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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