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당신이 몰랐던 대한민국
  • 박하윤 일반학생
  • 등록 2017-03-27 21:15:23
  • 수정 2017-04-04 14:05:22
기사수정

우리나라도 볼 게 많다!

 

 울릉도/독도 :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여행으로 갔는데, 무거운 가방을 끌고 편의점과 찜질방을 전전하다가, 숙소도 잡아주고 식사도 챙겨주 고 에어컨 빵빵한 차를 타고 설명과 사진촬영까지 해주는 걸 보며 자본 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했다. 주변 아줌마, 아저씨들이 밥도 사주시고 신경을 많이 써 주셔서 감사했다. 독도는 날씨가 조금만 안 좋아도 하 선하지 못한다고 들어서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굉장히 쨍하여 독도에 발을 딛을 수 있었다.

 

(안동 병산서원)

 

 안동 : 엄마가 하나뿐인 딸이 잘 다니고 있나 궁금하여 하루를 같이 다니기로 했다. 혼자 밥을 먹느라 그동안 유명한 메뉴를 많이 먹지 못 했는데, 엄마랑 있으니 간고등어도 먹을 수 있고, 찜닭과 안동 소주도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병산서원은 작고 아담한 느낌의 서원이었으 나 그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은 결코 작지 않았는데, 특히 서원 마루에 앉아 대문으로 바라보던 정면 풍경은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

 

 창녕 : 하루에 다섯 대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우포늪 의 넓은 습지는 광활한 초원과는 또 다른 감상이 들게 만들었다. 관련 된 일화가 하나 있는데, 거의 세 시간 반을 걷고 마지막으로 갈대숲길 을 지나면 출구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표지판에 ‘이 구역 은 야생 멧돼지가 출몰하니 혼자서는 출입을 자제하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주변엔 사람도 없고, 왔던 길로 돌아가자니 다시 3시간 반을 걸어야 할 처지라 울며 겨자 먹기로 갈 수밖에 없었다. 갈대 때문에 앞 은 안 보이고, 바람만 불어도 깜짝깜짝 놀라고, 그 와중에 고등학교 때 야생동물과 안 마주치려면 큰 소리로 ‘사람이 있다’는 신호를 줘야 된다 는 이야기를 들은 게 생각나서 노래 부르고 손뼉 치면서 걸어왔다.

 

 통영 : ‘태어난 곳은 내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을 곳은 어느 정도 선 택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할 수 있다면 통영에서 죽고 싶을 정도로 좋았던 곳이었다. 이순신 공원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푸릇한 나무들 과 시원한 바다가 예쁘게 어우러져 연신 감탄했다. 통영 주민들은 집 앞에 산책하러 나오면 이런 공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질투도 났다. 이 날 버스에서부터 나와 같이 오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혼자 여행 온 느낌이라 은근슬쩍 말을 걸었다. 결국 그 날 같이 다니며 사진도 찍어 주고, 맛집도 찾아가고, 여행 얘기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아주대학교 학생이라기에 개강하고 밥 한 번 먹자고 약속하고 돌아왔다.

 

(영월 사진박물관)

 

 울산 : 천전리 각석은 정말 신기했다. 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흔적이 하나의 바위에 남아있는 모습이 큰 충격이었다. 바위에 한자를 남긴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미 삐뚤빼뚤 남겨진 그림이 선사시대 사람 들의 유물이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누가 낙서를 했나 보군. 우리도 시 한 수 지어놓고 갈까.”하는 생각을 했겠지? 그런 우연들이 겹쳐져 이런 유물을 남겼다고 생각하니 인간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 게 되었다. 이런 쪽에 관심이 많다면 천전리 각석, 반구대 암각화, 암 각화 박물관까지 걸어가면서 구경하는 것도 괜찮다.

 

 화순 : ‘천불천탑’,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으로 유명한 운주사를 다 녀왔다. 수차례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건립 시기나 주체 등 밝혀진 게 없는 절이라고 한다. 가장 정신적 충족감을 느낀 날이었는데, 흙냄새 를 맡으며 절까지 걸어가는 그 길과 그 와중에 올려다본 하늘이 예뻤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차 시간 같은 건 상관하지 않고 보고 싶은 걸 충분 히 보며 카메라가 아닌 두 눈으로 모든 풍경을 담을 수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었다. 새가 지렁이를 물고 있는 모습, 참새들이 한 나무에 앉아 있다가 우르르 떼 지어 다른 나무로 건너가는 그 장관을, 그 날개 소리 를 이 날이 아니면 언제 볼 수 있었을까?

 

 순천 : 순천만에서 다들 일몰만 보고 가느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밤 에 천문대에서 달과 토성, 그리고 여러 별자리들을 관찰할 수 있다. 토 성이 과학책에 나오는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이진 않지만 그 특유의 고 리가 눈에 보이자 우주의 신비에 전율이 일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선 꽤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나와 같은 방을 쓴 사람이 스페인에서 여행 온 자매였다. 이것도 경험이다 싶어서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말하는데도 붙임성 있게 대해주어서 참 좋았다. 서로 여행일기 쓴 걸 바꿔 읽어보 기도 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여행이 남긴 것

 

 한 가지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충주에 도착하자 호우주의보가 발 령되어 쫄딱 젖어버리고, 정신없는 사이에 옷도 바닥에 흘려 잃어버리 고, 다음 날 마르지 않아 꿉꿉한 냄새가 나는 옷을 꺼내 입은 내 기분은 정말이지 우울했다. 발이 다 까져 절뚝거리며 버스 터미널까지 가서 캐 리어를 맡길 수 있느냐 물었을 때, 그리고 거절당했을 때, 드디어 “집 에 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곡 행 버스표를 끊을 때까지도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감곡에 도착했을 때, 날은 개어있었다. 매괴 성당을 향해 캐 리어를 끌고 걸어갔다. 그러다 전혀 예상치 않게 작은 벽화거리를 만났 다. 대단치 않은 크기였음에도 해바라기며, 하늘이며, 여러 풍경들이 칠해진 거리가 굉장히 큰 선물처럼 다가왔다. 벽화들 앞에 비에 젖고 바닥에 구르던 캐리어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마치 내 대신인 양.

 

 벌써 다녀온 반년이 넘어간 여행이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생각나 는 기억들이 있다. 하늘이 거울처럼 비치는 걸 보며 소금사막에 와 있 는 기분이 들었던 충주 탄금대, 나보다 400배나 오래 살았던 영월의 천 년 된 은행나무, 파란 하늘과 잔디밭 사이에 고고하게 서 있던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석탑, 폭우가 쏟아지는데 눈 닿는 저편까지 보이던 수국의 파란 빛깔에 숨이 멎을 듯 오싹하던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 폭 우에 젖는 바다를 보며 감상에 잠겼던 정동진.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졸다가 버스 종점까지 와 버리자 기사 휴게실에서 음료를 주고 다른 버스를 안내해주신 기사 아저씨나, 후식 으로 먹으라며 자두 몇 개를 쥐어주던 식당 아주머니, 돌아다니며 마시 라고 따로 얼음물을 담아주신 편의점 아저씨, 비에 쫄딱 젖은 날 흔쾌 히 터미널까지 태워주신 분들, 뙤약볕에 터덜터덜 걸어갈 때 먼저 불러 차에 태워주신 고마우신 분들까지. 왜 사서 이런 고생을 하느냐고? 이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 맛에 하는 거지!

 

 (부산 근대역사관)

TAG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