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우(정치외교전공) 교수
한국 사회는 현재 정치적 갈등, 양극화 등 사회적 분열의 심각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그룹에 소속된 국가들 중에서 한국인들이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가장 심각하게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외로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궁극적으로 이 외로움이 정치적으로 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 우리는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철학적 통찰이 필요합니다. 아렌트는 1973년 저서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타인과의 관계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인간 존재를 관계적 맥락 속에 놓고, "타인과의 세계"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강조했습니다. 아렌트는 동반자 관계가 존재의 불확실성과 모호성을 초월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동반자 관계는 정체성 위기 시기에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아렌트는 동반자 관계의 부재가 깊은 외로움의 경험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그녀는 외로움을 "모든 타인에게 버림받은 상태"로 묘사하며, 이는 단순한 물리적 고립을 넘어 개인의 깊은 소외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정체성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확인되고 인정받기 때문에, 완전한 고립과 소외는 심각한 정체성 위기로 이어집니다. 이는 깊은 혼란과 자아 인식의 방향 상실을 초래합니다. 아렌트는 이러한 고립이 "자기 중심적 슬픔"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실망과 불공정을 세상에 투영하여 세상을 평가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개인의 불공정 감각이 개인적 불만과 얽히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인식이 왜곡됩니다. 외로움에 빠진 개인은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에서 공동선을 위한 판단이나 행동을 하기 어려워지며, 이는 자신의 경험과 상호작용에 대한 신뢰 상실로 더욱 악화됩니다.
아렌트의 분석을 확장하면, 외로움은 세 가지 상호 연결된 상실로 나타납니다: 타인의 상실, 자기 상실, 그리고 세계의 상실입니다. 첫째, 타인의 상실은 단순한 물리적 고립을 넘어서는 관계적 유대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이는 인간의 기본적인 사회적 유대 필요성과 이러한 유대가 끊어졌을 때의 심리적 영향을 강조합니다. 둘째, 자기 상실은 사회적 거울의 부재로 인한 개인 정체성과 자존감의 감소를 특징으로 합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부재하거나 부정적일 때, 이는 정체성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세계의 상실은 개인적 소외를 넘어 공동체적 인간 경험에서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는 공동 가치, 목표, 의미에서의 단절로 이어져, 개인이 더 큰 공동체나 사회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크게 훼손됩니다.
이러한 상실의 총체적 효과는 사회적 분열로 나타납니다. 깊은 외로움에 시달리는 개인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분열되고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넘어서 사회 구조 전체에 대한 지독한 냉소주의를 유발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적 결속력과 협력적 생활에 필요한 본질적인 신뢰를 약화시킵니다. 사회적 신뢰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지속에 필요한 핵심적인 요인이라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아렌트의 외로움에 대한 고찰은 단순한 개인의 감정 상태를 넘어, 사회의 본질 그리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아렌트는 민주주의 퇴행의 극단적 형태인 나치즘과 스탈린의 전체주의가 이 외로움에 사로잡힌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한국사회는 외로움이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사회적 건강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며, 외로움의 광범위한 사회적, 정치적 파급 효과에 대해서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더 나은 사회적 지원과 연대감을 구축한다면, 고립과 분열의 문제를 완화하고 더 건강하고 안정된 사회, 더 나아가 민주주의적으로 회복력이 높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Arendt, Hannah. (1973). 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New York: Mariner Books.
Hertz, Noreena. (2021). The Lonely Century: How to Restore Human Connection in a World That's Pulling Apart. New York: Penguin Random House. OECD Data (https://data.oecd.org/healthrisk/social-support.htm)
Putnam, Robert D. (1993). Making Democracy Work.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