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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올진 세상] 기자의 물류센터 일용직 체험기, 열악한 처우 직접 알아봤다
  • 박준호 기자
  • 등록 2023-04-13 14: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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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상적 비정규직 비율, 문제점을 야기하는 근본적 원인
불과 몇 년 전,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여러 사망 사건을 기점으로 물류센터 현장의 열악한 환경과 경시되고 있는 노동자 복지를 지적하는 언론 보도가 연일 쏟아져 나온 바 있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물류센터에서의 근로자 처우는 달라졌을까? 이에 기자는 직접 물류센터 업무를 체험해 봤다.


과거 수차례 지적됐던 물류센터 노동 실태 

 지난 2018년 CJ 옥천 물류센터 근로자 사망 사건, 2020년 쿠팡 대구 칠곡 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사건 등 2015년부터 지금까지 CJ 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만 7명에 달한다. 사람들에게 물류센터의 열악한 처우를 알린 일련의 안타까운 사건들이 발생한 후에야 본격적으로 언론에서 여러 물류센터의 문제점이 공론화됐다. 당시 지적된 문제점들로는 △과도한 업무량·업무시간 △열악한 근무환경 △지켜지지 않는 휴식시간 △관리·감독의 부재 △시행되지 않은 안전교육 등이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쿠팡 노동조합은 상기의 문제점들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며 지속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과연 과거에 지적됐던 문제점들은 해소됐을까? 현재 물류센터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존재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는 직접 쿠팡 단기 일용직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기자가 직접 체험해 보는 물류센터 

  기자는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쿠팡 물류센터 일용직 업무를 지원했다. 쿠팡의 출·퇴근 기록은 철저히 앱을 통해 이뤄지는 모습이었다. 앱으로 출근을 기록한 뒤 본인 인증 카드를 발급받고 쿠팡에서 제공하는 안전교육 영상을 시청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업무에 투입되기 전 조금은 의아한 안내사항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보안·안전상의 이유로 물류센터 내 휴대전화를 포함한 전자기기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향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쿠팡의 휴대전화 반입 금지 방침에 대해 공공운수노조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으며, 지난 해 9월 인권위가 쿠팡의 휴대전화 반입과 관련된 현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다. 기자는 휴대전화 반입 금지 방침이 오히려 지난 2021년 6월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사고 같은 물류센터 내 사건·사고의 신속한 신고를 늦추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기자에게 지급된 인증 카드


 또한 기자는 분명 OB(출고) 업무를 지원했지만, 기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제 곳에 배정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남성은 자신의 지원한 업무와 관계없이 가장 노동강도가 높다는 HUB(상하차)에 배정됐고, 기자는 리빈 업무에 배정됐다. 2분간의 짤막한 업무 지시 후 곧바로 업무가 시작됐다. 리빈 업무는 바구니에 담겨 오는 여러 물품을 올바른 칸에 넣는 일이었는데, 정말 상상치도 못한 양의 바구니가 기자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쉴 틈 없이 앞뒤로 계속 움직여야 하는 업무였기에 결코 쉬운 업무라 볼 수 없었다. 업무 중 기자가 겪을 수 있던 또 하나의 문제점은 휴식시간의 부재였다. 쿠팡은 8시간 근무에 1시간의 점심시간을 부여해 근로기준법 54조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를 위반한 것은 아니었지만 식당으로의 이동 시간과 대기 시간을 더한다면 분명 1시간보다 적은 시간이 기자에게 휴식시간으로 허용된 셈이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제외한 휴식시간은 단 1분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기자는 요령껏 쉬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기자의 업무가 관리자에 의해 실시간 감시되는 시스템으로 인해 제대로 된 휴식은 전혀 취할 수 없었다. 관리자는 근로자에게 할당된 바구니 업무가 다 마무리되면 지체 없이 다른 라인으로 기자를 배정했고 그 덕분에 기자는 장장 8시간을 앉지도 못하고 분주히 움직여야만 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끊임없이 할당되는 바구니들은 기자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가했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이 모두 지나고 다시 앱으로 퇴근을 기록한 뒤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높은 노동강도에 비해 일급은 최저 시급에 그쳤다. 거의 하루를 투자해 받을 수 있던 돈은 최저시급보다 3,400원 높은 9만 9,600원. 노동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라 생각할 수 없었다.


여전히 존재하는 문제점, 이러한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 이유 

 쿠팡은 철저한 고객 지향적 마케팅을 중시한다. 지난 2014년 실시한 익일 자체 배송 서비스 ‘로켓배송’을 통해 신속함과 고객의 만족도를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겠다는 쿠팡의 신념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빅데이터를 물류창고에 도입해 새로운 물류 시스템을 구축한 쿠팡은 이제 거대 공룡 소셜커머스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쿠팡의 거대 물류 시스템에는 당연히 거대 인력이 수반돼야만 했다. 정치권에선 쿠팡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모범 사례로 칭찬하고 많은 지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쿠팡이 창출한 일자리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으로 불안정한 일자리다. 고용노동부 고용 공시(2020)에 따르면, 쿠팡 물류센터의 상용직은 1,948명에 그친 반면에 기간제 및 일용직은 1만 630명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거대 물류를 감당해야 했던 쿠팡은 복리후생, 계약 등 고용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정규 직원보단 빠른 시일 내에 보다 간단하게 인력 충원이 가능한 일용직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근로자를 복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전산시스템의 일부로 생각하게끔 만들어 한동안 쿠팡 내 근로자의 처우에 대해 잡음이 끊이지 않게 했다. 


더 심각한 문제를 떠안고 있는 중·소규모 물류센터 

 기자가 직접 물류센터 업무를 체험하고 각종 자료를 분석하면서 보거나 들을 수 있었던 의견은, 쿠팡 물류센터는 비교적 근래에 근로자 복지 개선 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에 타 물류센터에 비해선 업무 분담이 체계적이며 노동강도나 업무 환경 역시 양호한 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의 실태조사 자료를 통해 그 내용 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난 2021년, 고용부는 물류센터 등 51개 야근사업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바 있다. 실태조사 결과 무려 17개소가 특수건강진단 미실시로 적발돼 과태료가 부과됐다. 또한 휴게시간을 준수하지 않은 4개소가 적발됐고, 3개소는 휴게시설을 설치조차 하지 않아 시정지시가 내려졌다. 또 9개소는 연장·휴일 근로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6개소는 1주 12시간 넘게 연장근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의 성장에 따라 쿠팡의 근무 환경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돼 많은 부분 에서 개선이 이뤄졌지만,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중·소규모 물류센터에선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에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박스가 쌓여있는 택배물류센터


중요한 것은 해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해결책 제시돼야 

 물류센터의 열약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국가 차원에서의 정기적 실태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2021년, 고용부는 앞선 내용과 같이 물류센터 등 51개 야근사업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여 △특수건강진단 실시 △휴게시간 준수 △휴게시설 설치 △1주 12시간 이하 연장근로 등을 위반한 사업소를 적발했다. 고용부는 실태조사 당시 앞으로도 야간근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건강권 보호를 위한 교육·점검 지속 방침을 발표했지만, 고용부의 추가 실태조사 자료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5월 인권위가 참세상연구소와 노동권 연구소에 의뢰한 ‘생활 물류센터 종사자 노동인권상황 실태조사’ 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강도와 관련한 질문에 77.6%가 ‘빨리 걷는 수준 이상의 힘듦’ 이상의 강도를 경험한다고 답한 것을 비롯해 여전히 물류센터 내 노동자의 복지는 경시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류센터 노동실태를 지적한 인권위 조사자료

 

 물류센터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은 근본적으로 물류센터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발생한다. 복지 측면을 악화시키는 물류센터의 높은 일용직 비율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정된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물류센터 일용직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물류센터 노동자 복지를 개선하는 해결책이 제시돼야 할 시점이다. 


글·사진 박준호 기자 Ι parkjunho@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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