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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 욕설 작성
  • 김봄이 기자
  • 등록 2023-03-14 01:4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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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둘 중 하나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르겠는가. 전자는 손만 투명해지는 능력이며 후자는 얼굴만 투명해지는 능력이다.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사실 후자는 우리 모두가 발휘할 수 있다. 얼굴 없는 사람. 무슨 행동을 해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는 사람. 후자는 바로 익명 뒤에 숨은 사람들이다.

 

 뉴스와 웹툰 등의 사이트를 보면 익명으로 작성된 욕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명 ‘악플’이라고 불리는 악성 댓글에 대한 처벌 기준을 강화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피해자가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직접적인 처벌을 끌어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사트 내에서 아이디를 차단해 이를 제지하고자 해도 새 계정을 만들기 쉬운 현대 사회의 특성상 효과는 미비하다. 유명인의 경우 소속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일반인에 대한 모욕일 경우 기나긴 싸움이 된다.

 

 대학생이 접할 수 있는, 일반인에 관한 공공연한 모욕이 펼쳐지는 곳은 어디일까.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본 그곳. 바로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다. 기자는 본지의 대학팀으로 활동하며 하루에 한 번씩 에브리타임에 들어가 학생들의 불편 사항 및 관심사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크고 작은 논란은 이곳에서 익명으로 시작된다. 주로 에브리타임의 ‘Hot 게시물’을 먼저 확인한 후에 자유게시판을 보는 편인데 강의실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 혹은 특정 사건의 당사자를 헐뜯는 글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어떤 사실에 대한 비난만이 담긴 글에 작성된 욕설로 가득한 댓글을 볼 때마다 기자는 의아해진다. 과연 위와 같은 말을 당사자 앞에서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댓글을 작성하기 전 ‘생각하기→작성하기→전송하기’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작성 전 우리는 사고할 시간을 최소 두 번이나 가진다는 뜻이다. 기자는 위와 같은 사고 과정 후에도 처참한 수준의 댓글이 쓰인다는 사실이 사회의 암울한 이면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기자는 익명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익명의 힘은 있다. 앞에서 말하기 어려운 내용을 꺼내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내부의 압력이 가해지는 사태를 공론화하는 기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익명은 그저 ‘어려운’ 얘기를 진솔하게 꺼내는 수단이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익명이 그러한 기능을 하고 있는가. 지금은 그저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는다는 안도감 하나만으로, 절대 타인의 앞에서는 하지 ‘못할’ 자신의 음침한 감정과 말들을 꺼내놓는 일종의 도피처가 된 것은 아닐까.

 

김봄이 기자 Ι qq4745q@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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