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한올진] ‘적절한 배치기준 개선 촉구’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외치는 급식실 노동자
  • 정서희 기자
  • 등록 2022-12-02 12:11:11
기사수정
  • 조리 종사원 1명당 약 130명의 급식을 담당하는 초고강도 노동 이어져
전국 각지의 급식실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급식실 근무 환경 개선을 외치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그동안 노동자들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신체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본지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손경숙 급식조리분과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엇이 그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으며, 급식실 노동자들이 희망하는 개선 사항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봤다.


‘살기 위해’ 급식실 근무 환경 개선 촉구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급식실 노동자들이 근로 환경 실태와 건강 문제의 심각함을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급식실에서 이뤄지는 과도한 노동으로 폐 질환 등 여러 산업재해 위험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는 급식실 노동자들의 고충을 경기도교육청에 알리고자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했다. 이 행진은 ‘급식실 종사자 배치기준 개선’을 주장하며 경기도의회부터 경기도교육청까지 큰절과 걷기를 반복했다. 이들은 급식실 적정 인원 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많은 조리 종사원들이 산업재해로 고통을 받는 것이 현실이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급식실 노동자 배치기준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급식실 노동자들의 고충을 토로하는 외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월 29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하 학비노조)은 교육부를 향해 근무 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또한 지난달 15일에는 전국 학교급식 노동자 5,000여 명이 서울 용산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라며 소리쳤다.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학교 급식실 적정인원 충원, 환기시설 개선과 같은 근무환경 개선으로 폐 질환과 같은 산재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이들은 반복적으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울부짖고 있으며 이 투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적은 인원으로 이뤄지는 ‘초고강도의 노동’


 △본교 앞을 지나며 ‘오체투지’ 행진하는 급식실 노동자들 


 여러 급식실 노동자는 부족한 인원임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고강도 노동을 근무 환경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현재 경기도 초중고의 조리 종사원들은 약 1만 4,000명이지만, 급식을 먹는 인원수는 학생 140만 명, 교직원 40만 명으로 총 식수가 약 180만 명이다. 손 씨는 평균적으로 조리 종사원 1명당 약 130명의 급식을 만들고 있기에 높은 노동 강도가 요구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 많은 노동자는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11시 30분까지 세 시간 안에 적게는 300명, 많게는 1,000명 분의 급식을 만들어야 한다. 직업 특성상 많은 양의 음식을 정해진 시간 안에 준비해야 하는 압축적인 노동이 요구되기에 쉴 틈이 없는 것이다. 학비노조는 근무를 하던 중 구토와 어지럼증이 발생해도 단 2명이 조리를 끝내야 하기에 조금의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었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급식실 노동자 ‘폐암’ 위험에 쉽게 노출돼


 앞서 말했듯 많은 급식실 노동자들은 과중한 노동으로 신체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 그중 폐암 의심 진단을 받은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열악한 노동환경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올해 6개 시도교육청의 학교 급식 노동자 폐암 검진 중간 결과에 따르면 검사자 8,301명 중 1,653명이 이상 소견을 보였다. 이 결과는 55~59세 연령대의 평균 암 발생률과 비교했을 때 약 11배 정도 높은 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급식실 근무환경과 폐암 위험 노출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급식실 노동자는 매일 몇백 명의 급식을 조리해야 하기에 발암물질인 조리흄을 들이마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리흄은 기름과 동반한 가열 작업을 할 때 지방 등이 분해되면서 배출되는 물질로 작업 중 자연스럽게 폐암 위험으로부터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골병들어도 그만둘 수 없는 이유


 암뿐만 아니라 근골격계 질환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월 23일 △민주노총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건강한 노동세상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가 전국 학교 급식실 종사자 3,1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교 급식실 노동자 작업조건 실태 및 육체적 작업부하 평가’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최근 1년 이내에 △손·손목 96.3% △어깨 96.1% △팔·팔꿈치 92% △허리 91.3% △목 87.6% △다리·무릎 84.7% △발·발목 77.5% 순으로 통증을 겪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 근골격계 질환 환자일 가능성이 커 신속한 작업 환경 개선과 꾸준한 검진을 받아야 할 수준으로 나타났다. 손 씨는 급식실에서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는 △회전근계파열 △골프·테니스 엘보우 △손목터널 증후군 △손가락 변형 등의 질환을 동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무구조상 작업 중 질병이 발생해도 쉽게 일을 그만둘 수 없다. 급식 종사자 인원에 비해 많은 작업이 반복되다 보니 노동자가 아프거나 여타의 이유로 연차나 병가를 사용했을 시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신규로 입사하는 지원자도 충분하지 않아 쉽사리 일을 중단할 수 없다. 게다가 방학 중에는 임금이 없어 1년 중 3개월은 강제 휴직 상태가 되는데, 이는 급식 노동자의 인력난의 원인이 됐다. 결국 현 급식실 종사자는 대체 인력이 부족한 상태로 업무에 매진하고 있으며, 이는 급식실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현실적인 인지가 필요한 시점


△큰절과 걷기를 반복하는 행진열


 오는 25일(금)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총파업을 예고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바는 △정부 차원의 배치기준 연구 용역 진행 △환기시설 개선 △정기적 폐암 건강검진 △노동조합·노동부·교육청 3자 협의체 구성 등이다. 급식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처우개선, 권리보장을 위한 파업과 중대재 해기업처벌법 위반 고발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 씨는 급식실 노동자의 근로 여건 개선을 위해 정부가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보다 ‘신속한 배치기준 개선’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문제가 개선되면 근무환경에 도래하고 있는 여러 산재로부터 급식 노동자 근무 환경의 안전이 어느 정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또한 적은 인원으로 시간에 쫓겨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화상, 미끄러짐과 같은 사고도 도사리고 있기에 적절한 인원 배치로 근무 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그들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급식실 노동자들의 고충에 대해 교육부와 교육청은 지금까지 임금이나 복무제도 중심으로 개선을 시도해왔지만, 지금은 급식실 노동자 실태에 대한 현실적인 인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급식실 노동자들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이며, 많은 동료들이 다치거나 묵묵히 아픔을 참고 버티다가 지쳐 그만두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손 씨는 “급식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일하려는 사람이 없는데 아이들을 위한 급식을 만들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급식실 노동자의 현실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각종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온 힘을 다해 정성이 가득 깃든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노동자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불편을 호소해도 문제 해결 에 차도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누가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 누구도 고통받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모두의 급식실이 필요한 순간이다.


정서희 기자 Ι seohee0960@kyonggi.ac.kr 


 


 

TAG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