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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에서 만난 창덕궁 유물 ‘봉황문인문보鳳凰紋引紋袱'
  • 편집국
  • 등록 2022-10-05 16:2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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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채색화의 원형을 보다

배정하(Fine Arts학부) 교수


 한국화는 40여 년간의 현대화 운동을 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전통과 현대화의 간극 속에서 힘든 여정을 겪고 난 후 현재의 대중들과 교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것에 대한 주체적 정신성을 작품에 담을 수 있는 연구가 부족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던 중 국립고궁박물관의 도움으로 봉황문인문보를 수장고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놀랍게도 너무나 많은 한국화의 원형原型이 담겨있었으며 한눈에도 현대 한국화가 지향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보고임을 알 수 있었다.

   

 봉황문인문보는 조선 시대 왕실의 가례를 위해 그림을 그려 특별히 제작된 유일한 보자기이다. 보자기 표면에는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봉황문鳳凰紋, 동물문動物紋, 화문花紋, 과실문果實紋, 문자문文字紋, 보문寶紋, 자연현상문自然現象紋 등의 다양한 문양들이 복합적으로 그려져 있다.

   

 인간은 오랜 세월 밀접하게 관계해온 사물事物을 문양으로 만들어 상징성을 부여했다. 이렇게 생성된 문양은 그것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 간에 상호 교감하는 약속된 부호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주술적인 형식원리와 비슷한 것으로 문양을 그린 사람을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봉황문인문보에 나타난 동물문양으로는 봉황과 박쥐가 있다. 봉황과 박쥐를 사용한 이유로는 천天, 신선神仙, 장수長壽의 사상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봉황문인문보에 식물문양으로는 모란, 국화, 당초, 영지, 귤, 석류, 복숭아, 불수감 등이 부귀와 영화, 다산多産, 장수長壽의 의미로 그려져 있다. 문자 문양을 살펴보면 우리 선조들은 좋은 뜻이 담긴 문자를 통해 자신들의 염원을 표현했다. 문자를 보자기에 장식하면 하늘로부터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봉황문인문보에는 보배 문양과 자연현상 문양도 그려져 있다. 보배 문양은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자연현상 문양은 원시 미술에서부터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문양이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재해석하여 인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미와 결부시켜 만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문양들은 주변을 아름답게 장식을 위한 역할과 함께 상징성이 담긴 사고思考의 산물인 것이다.

   

 색채로는 전통 오방색五方色을 사용하여 한국인들의 색채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기법으로는 일제 강점기에 사라진 ‘물감 쌓아 올리기 기법’, ‘바림 기법’과 함께 ‘수묵 기법’, ‘백묘 기법’ 등이 원형 그대로 나타나 있다.

   

 봉황문인문보에는 당대의 시대정신과 감각이 잘 나타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색채미와 도상에 내포된 의미, 감성이 녹아 있다는 점이다. 결국 한국화의 현대화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한국의 미의식을 우리시대에 맞게 발전시키는데 있다. 수많은 예비화가들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정립하는데 간과하면 안될 것은 한국의 정신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작품 속에 녹여내는 것이다. 세계미술의 흐름은 로컬 아트로 급격히 변모하며 현대 화단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화의 미래는 한국인의 시각, 한국인의 정신, 한국인만의 독특한 미감을 발현시켜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로 발전시켜야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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