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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생기와 살기
  • 편집국
  • 등록 2022-05-30 0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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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의 엄혹한 기운이 물러나고 이제 봄기운에서 여름 기운으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 살기가 넘쳐나던 세상에 이제 생기가 넘쳐나니 즐겁고 고마운 일이다. 이토록 갈구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니 저절로 신명이 싹튼다. 그렇지만 우리 지구촌에 또 다른 살기가 가득하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야기된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새로운 원숭이두창(monkeypox) 질병이 새롭게 우리에게 엄습하고 있다. 하루라도 편안한 날이 지속되지 않는다. 그만큼 지구는 좁아지고 있으며, 인간들이 저지르고 있는 인류세의 비극이 지속될 전망이다. 


 이제 새로운 학문을 하는 자세를 정립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다. 새로운 학문을 통해서 근본적 문제를 진단하고 대처를 하는 것이 신속하게 요구된다. 학문은 대학의 본령이고, 대학의 임무이며, 대학의 사명이다. 비록 대학이라고 하는 그릇이 굳어져서 모든 것을 담아내지 못하지만, 유연성과 신속성으로 대처하면 새로운 학문의 전개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굳어진 세계의 낡은 목소리보다는 부서진 세계의 절망과 열망을 노래하는 학문이 이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학자가 학문의 혁신을 이끌지 못하게 되면 대학은 전멸한다. 학문을 하는 학자는 신중하게 처신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학문적 대상을 처결해야 마땅하다. 그러면서도 학문에 대한 시원스럽고 상쾌한 멋과 취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실한 것에 명석함이 따른다고 하는 점을 잊지 말고, 대상과 만나서 신명난 작업을 잊지 않아야만 한다. 학문하는 사람이 열정과 신명을 가지고 신중하게 일을 처단하게 되면 미래가 있는 것이다. 


 학문하는 학자가 외골수로 단단하게 동여매기만 하면, 학문은 점점 고립되고 조여져서 좀체로 숨을 쉴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은 가을철에 일어나는 살기와 같아서 앞으로 진전할 수 없게 된다. 자신만의 것을 강요하고, 하나로 굳어져 있는 세계만을 향하여 나아가는 절벽과 낭떠러지에 이르기 십상이다. 그것은 일종의 자살행위이다. 학문하는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봄날처럼 다사로운 생기가 있어야 한다. 자신도 솟아나고 남도 움트게 하면서 만물을 생장하게 하는 이치와 원리를 탐구해야만 한다. 나날이 싹트는 생기의 신명이 없는 날이 없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이 시대의 학문은 커다란 장벽과 함께 한다. 디지털 플랫폼이 우리를 옥죄이고 있으며, 모든 지식과 소통을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숨 막히는 진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지식은 이제 기억의 편리한 면모를 구현할 수 있는 용량이 충분한 저장 탱크를 얻어낸 셈이다. 이와 반대급부로 무엇이든 사용할 수 있는 기제를 얻었다. 다만 용기에 있는 것을 활용하면서 다각도로 원용하게 되는 창조력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하늘 아래 해와 달처럼 별반 새로울 것은 없지만, 우리는 법고(法古)와 창신(創新)이라고 하는 전통 속에서 새로운 추구를 하고 나날이 새롭고 새로운 학문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날이 새로운 것이 이 세상에 쏟아져 나온다. 무한한 정보가 숨을 쉴 수 없게 거듭 홍수처럼 밀어닥치고 있다. 이것은 생기인가 살기인가? 이는 학문적으로 보아서는 별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홍수처럼 범람하는 정보를 단도리하여 잡을 수 있는 판단이 긴요하다. 정보의 유용과 무용을 준거삼아 버릴 것은 버리고, 가질 것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학자는 대학의 근간이 되고, 학문 공동체의 기둥 구실을 해야만 한다. 


 학자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고안과 설계는 이론 창조에 있다. 창조적인 능력의 온당한 발현이 바로 이론적 가능성 여부를 실험하는 것이다. 인류의 모든 미래가 학자의 창조적 이론에 있다고 하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론은 모든 학문에서 가능한 창조이다. 자연학문만이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문이나 인문학문 모든 분야에서 이론적 창조는 무한하게 열려 있다. 


 이론창조의 고민은 자연학문만이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착각이다. 자연학문에서 행한 일련의 창조가 살기로 다가선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핵분열과 핵융합은 과연 적절한 창조였는가? 인문학문의 생기와 자연학문의 살기가 서로 어떻게 조화롭게 할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소탈한 자신의 반성이 학문으로 아롱질 때에 생기와 살기를 모두 고려하는 위대한 학문을 창조하는 학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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