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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다가갈수록 어둠이 깊어진다
  • 편집국
  • 등록 2022-03-28 09:17:04
  • 수정 2022-05-18 13: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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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바뀌었다. 장차 무슨 일이 있을지 갈라진 우리나라의 민심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아무 것도 예견되지 않는다. 다만 이 혼란한 정국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달이 차고 기울 듯이 오직 무상한 천체의 움직임은 지속된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희망이나 여망이 마르지 않게 하길 바랄 따름이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말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각박한 세상 물정을 헤아리고 강퍅한 이들이 난무하는 인정을 어떻게 고르게 할 것인지 무엇도 장담하기 어렵다. 


 산에 들에 지천에 널려 있는 꽃에 이제 망울이 잡히고 있다. 언젠가 그들의 봉오리 속에서도 꽃이 발돋움하면서 새롭게 세상에 작렬하며 함성처럼 꽃이 맺혀 나오리라. 그들에게 차가운 기운이 미쳐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들의 미래와 안녕에 결단코 어떠한 늑약하거나 질곡이 작동해서는 안된다. 준엄하고 엄혹한 현실에 잠시라도 눈을 감아서도 안된다. 정파나 정국의 분열이 그들의 미래를 압제한다면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반역 행위일 것이다. 천지에 맑은 꽃향기가 세차게 용솟음쳐 퍼져 나아가는 분위기와 판도를 형성해야만 한다. 


 학문하는 학자, 믿음을 선도하는 종교가, 정치를 하는 정치가 등을 비교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람을 타지 않고 쉽사리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결국 학문에 있음을 명확하게 추론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대통령이 되었어도 학문에 관심을 두고 학문에 투자할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있음이 팍팍한 현실정이다. 나라의 미래가 온통 먹거리와 상업제품 생산에 골몰하고 있으나, 미래 동력의 근간이 학문 바탕을 견고하게 다지는 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깊은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표심의 향배나 선거의 판국을 점치는 헛된 표를 바라는 망상의 숫자 놀음 거품에 깊이 사로잡혔다. 정책이나 국정의 지표는 여야 후보 서로 표절과 베끼기를 서슴지 않았을 따름이다. 정치가의 근본 한계가 여기에 있다. 표를 바라고, 민심을 선도하게 되면 역으로 공허하고 허황한 결과만을 되돌려 받게 된다. 그 무서운 보복이나 반론을 감당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를 믿지 못하게 된다. 표 많이 받고 실천한 공약이 몇이나 되는가! 언제나 표를 주도한 이들의 고픈 배를 채우는 당파의 전략가나 지지자들을 배부르게 하는데 시간을 쏟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것이 무서운 사실이다. 


 자신의 믿음이 옳고, 그들의 선이 다른 신을 믿는 이들에게 통할 수 없다고 하면서 종교가들은 사태를 현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선이 최악이 되는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견고하게 유지하라고 이들의 독주와 독선에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일구고 있는 선의 텃밭은 여전히 관습으로 얼룩져 있다. 종단이나 교단을 비롯한 종사자의 횡포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우리의 미래는 믿음에 얼마나 튼실하게 신앙으로 복종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한다. 종교 방송에 시사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오히려 정치가의 변론보다 면담 프로그램에서 대담을 위장하여 정치를 선도하는 역설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학문을 하는 학자들이 대답할 차례이다. 학문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 교육은 학문과 어떠한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학문의 지표가 무엇인지, 학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근본적 성찰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학문과 학문의 실천이 교육에 대해서 근본적인 정책의 고안이나 설계가 없다. 그러면서 교육부의 채찍은 여전히 우리나라 대학을 강고하게 견인하고 있다. 안되면 되게 할 것인가? 학문 역시 정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학문은 인기에 편승할 수 없다. 어쩌면 소수의 전문적인 학자들의 현실 속에서 진정으로 진전이 있는 학문을 해야만 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 모두에게 학문을 알게 할 수 없다. 다만 몇 사람들이 동의하거나 부인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것들의 쟁점이 해소되고 의문과 반문 속에서 성장하는 순도 높은 학문이 필요하다. 앤드루 와일즈가 증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논문 검토 과정에서 오류를 검증한 인물은 오로지 단 한명 리처드 로런스 테일러였을 따름이다. 그 세미나에 참여한 대학원 학생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어떠한 오류를 교정하는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어떤 이가 그 과정을 외로운 섬에 고립된 처지로 표현한 적이 있다. 학문은 모름지기 그러한 세계이다. 이 고독을 선택한 이들이 인기에 영합해야 할까?


 하지만 학문의 세계가 준열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른 바 ‘도고일척 마고일척’(道高一尺 魔高一丈)이라는 말이다. 도가 한 자 높아지면 마도 또한 한 장 높아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에 다가갈수록 어둠 또한 더욱 깊어진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 학문을 하는 이들이 언제나 마음을 다잡고 돌올하나 외로움을 견디어 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 깊은 번민 속에 눈을 반짝이는 초심자 학생들이 무한의 세계로 눈망울이 번뜩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로 무덤 같았던 학교 교정에 이제 학생들이 가득차고 강의실에 수업하는 목소리가 청정하다. 산에 들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기운 역시 가득하다. 나무도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을 것이고, 다시 한 계절이 바뀌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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