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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의 시대, 시비 분별을 넘어서는 지혜
  • 편집국
  • 등록 2021-08-30 10: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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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안팎으로 어수선하다. 자고 일어나면 소란스러운 다툼이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쉴 사이가 없다. 저마다 주장을 하면서 나는 옳은데 왜 너는 그른가, 자기는 타당한데 남은 왜 부당한가 주장하는 일이 혼탁한 시비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상극이 극에 달하고 상생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입과 귀를 살펴서 선인의 지혜를 말하는 것조차 외람스럽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소중한 지혜를 열어 미래를 사는 슬기로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span>노자>>를 구실삼자.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둘이다. 하나이므로 조심하고, 둘이므로 경청한다. 인생의 진리 가운데 하나는 말을 하면 듣지 못하고, 들으려면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진리이다. 떠들면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서로 깊이 연관된다. 말을 많이 하면 정신이 사나워지고, 말을 하지 않으면 고요해지고 아울러서 남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진리는 이렇게 비롯되어야 마땅하다.

  <<</span>노자>>에서 말한 바가 있다.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고 하였다. 도귀장(道貴章) 56에서 한 말이다. 무척 차원이 높은 말이지만, 차원을 낮추어도 이 말 역시 긴절한 뜻이 있다. 낮은 이치로 말한다면, 위에서 말한 입과 귀의 문제이다. 말하지 않고 들어야 진정하게 아는 것이고, 말하면 진리에서 멀어지므로 경계해서 한 말이다.

  그렇지만 이 말을 높은 이치로 풀어서 말한다면 더욱 간절한 뜻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뜻을 깨우쳤으므로 쉽사리 말로 할 수 없으며,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에 계합하여 진리에 통달한다는 뜻이고, 말하는 사람은 사물을 분별하고 진리를 말로 차원을 낮추기 때문에 도무지 짜개져버린 진리로 달통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무명(無名)의 진리를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더욱 중요한 문제이다. 무엇을 알기 때문에 말을 지껄이는 것이고, 무엇을 모르므로 함부로 지껄이지 않는 것이다. 지절거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소중하고, 함부로 까불고 나대기만 하면 진리는 한창 멀어지고 만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여 <<</span>노자>> 불병장(不病章) 71에서 한 말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으뜸의 지혜이고,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병폐이다’(知 不知 上 不知 知 病)고 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점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학자는 모르는 것이 많아야 하고, 교사는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는 설파의 직언도 바로 이러한 것과 깊이 있게 상통한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한다는 유가의 말과 달리 모르는 것을 알며,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것을 경계삼아서 이른 말일 수 있다.

  <<</span>노자>>라는 책자의 곳곳에 알지 못함에 대한 말들이 적지 않다. 모름지기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말로서 이치를 드러내는 것에 무명의 핵심을 절절하게 말하고 있어서 더욱 문제이다. 노자가 결론처럼 말한 부적장(不積章) 81에서 결론처럼 말한 것을 주의 깊게 살펴야만 할 것이다. 신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신실하지 않다. 착한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아는 사람은 박학하지 않고, 박학한 사람은 알지 못한다(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라고 말한 바 있다.

  <<</span>노자>> 상하편에 결론을 삼아 휘갑하면서 말을 가지고 말을 문제삼았으니 오천 언에 해당하는 말이 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1장에서 말한 도를 도라고 하면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고 한다면 이미 영원한 이름이 아니라고 언명하지 않았는가? 사람의 말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정하고 이 말로써 참되지 못한 도를 나타낼 수 없으나 굳이 말로써 이를 드러낸 것이다. 말이 의혹이 있으나 말을 중시하지 말고 말을 떠난 말, 말로 분별된 가장자리를 넘어서서 말의 본질, 무엇이 진리의 고갱이인지 알아보도록 하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풀고 있는 셈이다.

  노자의 언어관이나 진리관을 흔히 무명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무명은 노장사상의 핵심적 언변에 해 당한다. 말을 말이라 하지 않고 도를 잠시 표현하는 임기응변적 성격이 강한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말을 넘어서는 말, 말의 숨은 이치를 경정하는 말이 귀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노자의 숨은 속셈이 있다. 분석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가르거나 쪼개는 것이 말의 본질인데, 그것을 넘어서자는 것이다. 무명은 천지의 시작이고,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가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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