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빼앗긴 운동장
  • 편집국
  • 등록 2021-03-02 09:07:56
기사수정


 

 코로나19 팬데믹의 강점기에도 봄은 오고 학기를 시작한다. 개학은 했지만 코로나19로부터 해방은 맞지 못해서 학생들은 학교에 오지 못한다.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들에서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니 이번 학기 내에 학생들이 등교할 수 있길 기대한다. 학생이 없는 학교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아무리 멋진 술병도 술이 담겨 있지 않다면 결국 빈병으로 버리게 된다

작년 내내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지 못하고 두 학기를 마쳤다. 마침내 등교해서 교정을 보면 가장 큰 변화로 운동장이 사라진 걸 볼 것이다. 운동장 대신에 인조 잔디 축구전용경기장이 들어섰다. 너무나 깔끔하고 산뜻해서 경기대 다른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거기서 경기도를 대표하는 대학의 이미지를 느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바비인형을 갖다 놓은 것처럼 낯설다. 도대체 누굴 위한 인조 잔디 축구경기장을 만든 것일까? 그전엔 낮이고 밤이고 누군가는 운동을 하고 있었던 곳에 감옥처럼 울타리를 쳐놓아서 텅 비어있는 푸른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숨을 넘어 울화가 치민다.

전공은 영문학이지만 동양 사상에도 일가견 있었던 지금은 정년퇴직한 교수님이 유명 풍수가에게 들었다는 말이 생각난다. 경기대에서 가장 좋은 땅이 운동장이란다. 경기대의 심장이고, 풍수적으로 가장 안정된 아늑한 명당이라 했다. 경기대에서 가장 위풍이 센 곳은 본관이 있는 자리다. 경기대가 바람 잘 날 없는 이유가 본관이 가장 바람을 많이 받는 곳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라 했다. 그 풍수가는 운동장 부지를 경기대 중심으로 삼고 본관을 옮기면 전성기를 맞이할 거라 장담했다. 바로 그 곳에 코로나가 학교를 점령한 사이에 대다수 학생들에겐 무용한 축구장이 들어섰다. 내가 아는 한 경기대에서 가장 잘못 지은 건물 1위가 컨벤션센터이고, 2위가 씨름전용체육관이다. 컨벤션센터는 주말 교회가 돼버렸고, 씨름장은 수원시의 조차지(租借地)로 전락했다.

나 같은 세대에게 학교하면 떠오르는 게 운동장이다. 초중고 학교를 다닐 때는 운동장 조회를 했고 운동회의 추억이 있다. 대학 다닐 때 운동장은 집회와 축제의 장소였다. 대학이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운동장은 없어지고 건물들이 들어섰다. 경기대 운동장은 개발 시대에도 살아남아서 다용도로 사용됐다. 학생들 축제의 마당이 됐고, 축구는 물론 야구를 하고, 우레탄이 깔린 트랙은 동네 사람들까지 와서 달리는 곳이었다. 입시 때 운동장은 주차장의 기능도 훌륭하게 했다. 운동장 한편에는 철봉과 평행봉도 있었는데, 축구장으로 바뀌면서 모든 게 철거됐다. 오직 축구만 운동인가? 그리고 그렇게 자물쇠로 꽁꽁 잠가놓으면 누가 거길 이용할 수 있는가?

축구대회를 개최해서 수입 사업을 할 목적으로 명당자리에 그런 시설을 만들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 운이 좋아서 비대면 수업이 정상이 되는 뉴노멀의 바람을 타고 학교의 용도가 그런 식으로 바뀌는 것의 선도모형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정말로 그런 세상이 오면 학교 자체가 없어진다. 정말 지금 이대로의 축구전용구장이 돼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데 밖에선 외부에서 온 선수들이 축구 시합을 벌이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교실과 경기장은 분리돼야 마땅하다.

프랑스의 에펠탑도 처음 세워졌을 때는 파리의 미관을 해치는 흉물로 비난을 받았다. 시간이 약일 수 있다. 운동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축구경기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진정 그걸 바라는가? 아니라면 적어도 3가지는 개선돼야 한다. 첫째, 운동은 축구만 있는 게 아니다. 운동장으로서 본래 기능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학생들의 광장이 될 수 있도록 개조해야 한다. 축제의 장소와 집회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울타리를 철거하라. 학교는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축구부만을 위한 경기장이 아닌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빼앗긴 운동장을 되살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경기대 랜드 마크가 학생들 기숙사가 된 것도 유감천만인데, 이러다간 경기대 얼굴마저도 인조 잔디로 성형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김기봉 (사학과)  교수

               



TAG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