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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작.소] Closer / 세이렌/ 박씨전
  • 김희연
  • 등록 2019-05-14 09: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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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전

임경은(국어국문·3)

 

 웅장하게 드리운 나뭇가지들이 흔들렸다. 여기저기에서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마치 소곤거리는 목소리 같아 섬찟했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상황에 용골대가 칼을 잡아들었다. 별안간 행군 앞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크게 드리운 나무들이 끔찍한 얼굴을 하고 병사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상황 속 병사들은 파랗게 질려 도망가려 했지만, 나무들에게 둘러 쌓인 채 무참히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살려달라는 울음소리와 하나 둘 쓰러지는 병사들의 시체들, 그리고 마치 호통치듯 갈라지는 소리를 내는 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숲 속은 아비규환이었다. 용골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한탄했다. 동생의 원수를 갚으러 박 씨를 잡아 죽이려 했거늘, 역시 보통여자가 아니구나. 그는 자신의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원망이라도 하는 듯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뻐끔뻐끔 거리다 어느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며 미동이 없었다. 이미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했지만, 용골대는 하늘을 보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네 어찌 비겁하게 숨어서 나를 농락하려 하느냐!”

 

 그러자 나무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뻣뻣한 동작으로 일제히 용골대를 바라보는 나무들이 입을 크게 벌렸다. 마치 인간의 웃음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듯한 뒤틀어진 소리와 괴기스러운 광경에 용골대는 겁에 질렸다. 그 때 광풍이 불더니 나무들에 불이 붙었다. 활활 타오르며 병사들에게 달려드는 나무들에 용골대의 군사들은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타오르는 전쟁터와 같은 상황 속, 저 멀리 사람의 형체가 어른거렸다. 긴 칼을 뽑아들고 자신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모습은 영락없는 박씨였다. 그녀가 칼을 한번 휘두르자 달려들던 병사들 의 목이 잘려 나갔다. 그녀가 걸어오는 곳곳 피 웅덩이가 고였고,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밀어닥치는 공포를 억누른 채, 용골대가 칼을 뽑아들었다. 힘찬 고함소리를 지르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모습을 보곤 박씨는 싸늘 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에게 겨누어지는 칼을 맞받아치며, 박씨는 용골대를 크게 베었다. 반격할 새도 없이 용골 대의 팔 한쪽이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용골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반격하려 했지만 이미 박씨의 칼이 자신의 목에 드리운 이후였다. 도저히 타계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 결국 용골대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다리 언저리 에서 나뒹굴고 있는 병사들의 머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머리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울음을 터트리고, 지독한 욕지거리를 내뱉고, 실성한 듯 크게 깔깔대는 머리들의 눈은 전부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까드득, 까드득 이빨을 갈아대던 머리들이 용골대를 죽이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마치 지옥 한가운데에 있는 듯 했다, 수많은 적군들에 둘러 쌓인 채 죽음을 맞는 것을 원으로 생각했거늘.

 

“네놈의 머리를 바쳐 나라의 안전을 도모하리라”

 

 박씨가 크게 팔을 휘두르자 용골대의 목이 맥없이 땅에 떨어졌다. 박씨는 공포로 일그러진 용골대의 머리를 잡아들곤 숲 속을 벗어났다. 살아 있는 자 없이 불타는 숲속은 가히 팔열지옥 그 자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 불길이 사그라들자, 주인 없이 새까매진 숲속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해졌다.

 

작품설명

우리나라의 고전 문학인 박씨전을 읽었다면 바로 기억할 수 있는 유명한 대목을 사용했다. 고전에서 이 장면은 우리로 하여금 통쾌함, 짜릿함을 안겨주지만 만약 이 작품의 서술자가 다른 인물이었다면 우린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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